[정보통신]자고나면 협회 창립 - 벤처업계 몸살

  • 입력 2001년 5월 6일 18시 34분


올해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일부 벤처기업 사장들이 주축이 된 ‘한국방문의 해’ 홍보사절단이 창립기념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달 ‘닷컴에 새 희망을, 경제에 새 활력을’이라는 기치를 내걸며 서울 벤처밸리에서 노란색 풍선 2000개를 띄워 올리는 등 요란한 행사를 벌였다….

벤처기업들의 ‘장외 유세’가 부쩍 두드러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벤처기업이 기성세대 기업을 흉내낸다” “본업은 제쳐놓고 지나치게 외부행사에 매달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최근 벤처업계에 유사한 이름의 ‘협회’가 잇따라 생겨나 “정치권의 고질적인 패거리문화가 벤처기업에까지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회사 일을 챙기는 데도 몸이 몇 개라도 모자라는 실정”이라며 “선배 벤처인의 반강요에 못이겨 ○○협회에 가입은 했지만 협회 활동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정부기관에 공식 등록된 사단법인은 산업자원부에 벤처기업협회 등 2개, 정보통신부에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4개, 중소기업청에 한국여성벤처협회 등 10개로 모두 16개에 이른다. 문제는 이들 단체들 중에는 기능이나 회원 구성이 중복되는 곳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상당수 벤처 관련 단체는 정부기관에 등록도 하지 않았다.

벤처 관련 단체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그 과정에서 기존 단체와 분란을 빚는 경우도 있다. 정보통신부와 일부 정보기술(IT)분야 여성 벤처기업인들의 주도로 3월말 정보통신중소기업협회 안에 신설한 여성특별위원회(위원장 김혜정 삼경정보통신 사장)가 대표적이다. 여성특위 출범에 대해 기존 여성벤처인들의 모임인 여성벤처협회(회장 이영남 이지디지털 사장)는 강한 반대의사를 밝혔고 아직까지 서운한 감정이 풀리지 않고 있다.

여성벤처협회의 한 부회장은 “여성벤처인들의 수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자꾸 비슷한 단체가 생겨나면 여성벤처인들의 목소리가 분산돼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여성벤처협회가 중소기업청에 등록된 단체이기 때문에 정보통신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별도의 여성벤처 단체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기관간의 세력 다툼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성특위측도 할 말은 있다. 김혜정 사장은 “기능이나 회원 구성이 일부 중복되지만 여성벤처협회와는 분명히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여성벤처협회가 여성벤처인들 일반의 이해를 대변한다면 여성특위는 IT분야 여성벤처인만의 독특한 이해를 대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특위가 필요없는 단체라면 짧은 기간에 100여개의 기업이 참가했겠느냐”고 반문했다.업계는 비단 이 사안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세 과시’ 때문에 협회가 본연의 자세를 일탈하거나 유관단체끼리 갈등을 빚는 사례가 앞으로 극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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