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사채 권하는 사회

  • 입력 2001년 5월 6일 18시 34분


신용카드를 이용해 한두번쯤 현금서비스를 받아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연 20%를 웃도는 이자가 부담스럽지만 급한 돈을 간단히 융통할 수 있어 서민으로서는 요긴한 서비스다.

그러나 ‘긋기만 하면 되는’ 편리함 때문인지 뒷일을 생각지 않고 카드를 쓰다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않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간단하다. 5만원 이상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빨간 줄’이 그어진다.

금융감독원은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며 최근 대책을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카드회사들의 카드대출이나 현금서비스 등 ‘부대업무’를 제한하겠다는 것. 정부는 현금서비스를 억제하면 신용불량자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책 의도가 좋다고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도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2∼3년 사이에 이른바 ‘생활자 금융’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생활자 금융이란 카드대출 현금서비스 할부금융대출 등 1000만원 이하의 소액을 간단하게 빌려주는 대출서비스. 이 시장이 급성장하는 이유는 신용도가 ‘그저그런’ 사람에게도 연 20∼30% 수준의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채로 인한 서민 피해를 없애겠다고 한다. 그런데 사채꾼을 없애는 것만으로 사채피해를 근절시킬 수 있을까? 이같은 질문에 대해 경제학 교과서는 ‘아니다’고 가르쳐준다. 사채피해를 없애려면 사채수요자인 서민에게 대안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액대출을 꺼리는 은행의 높은 문턱, 복잡하고 까다로운 대출절차 등이 고쳐져야 한다. 또 신용도가 좀 떨어지는 사람에 대해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서라도 은행이나 신용금고 카드사 할부금융사 등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줘야 한다.

현금서비스나 카드대출시장을 틀어막으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어디로 갈까? 불법이 판을 치는 사채시장밖에 없다.

이훈<금융부>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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