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이슬람과의 대화]인도네시아 "종교갈등 몰라요"

  • 입력 2001년 5월 6일 18시 44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는 30만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아시아 최대의 이슬람사원이 있다. 인도네시아가 인구 2억2478만명 가운데 87%가 이슬람교도인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임을 실감케 해준다. 바로 그 앞 4차로 도로 맞은편에 가톨릭교회가 있다. 유일신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이 가톨릭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가톨릭교회에서 만난 청소원 나만 미딘(49)은 놀랍게도 이슬람교도였다. 25년간 교회에서 일해온 그는 하루 다섯 번씩 이슬람사원에서 기도를 올린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 교회 축제 때에는 파티에도 참석한다. 초등학교를 나온 그는 “다른 사람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못 배운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의 정치와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대의 이슬람 단체 회장이었던 압두라만 와히드는 당시 소수 의석을 갖고도 지난해 이슬람계 정당의 합동추대로 대통령에 올랐다.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의 국교가 아니다. 이슬람 불교 가톨릭 힌두교 기념일이 모두 공휴일이다. 이슬람 규율도 느슨해 보인다. 자카르타에서 이슬람 복장을 한 여성은 10명 중 한 명도 안됐다.

인도네시아 종교부 이슬람교육개발국장이자 이슬람학자인 코마루딘 히다얏 박사(48)는 “13세기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힌두교와 불교가 정착돼 있었으며 이슬람도 무력 아닌 무역을 통해 평화적으로 들어왔기에 다원적 종교관이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자카르타 동남쪽의 고도(古都) 족자카르타에서도 ‘관용’과 ‘조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이슬람 왕궁, 불교사원, 힌두사원이 인접해 있다. 불교사원인 보르부드르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8∼9세기경 세워진 세계문화 유산. 힌두사원 프람바난은 9세기에 건설됐으며 힌두신인 시바와 브라만 상이 모셔져 있다.

족자카르타 주지사 겸 술탄인 하멩쿠 부워노 10세가 사는 이슬람왕궁은 이슬람과 불교 힌두교를 모두 담은 건축양식이다. 왕궁 건물의 기둥을 자세히 보면 윗부분은 힌두신화에 나오는 거인의 이, 중간은 불교의 연꽃, 아래는 아랍의 전통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무속신앙도 이슬람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무당처럼 점을 치거나 병을 고치는 ‘두쿤’을 찾는 이슬람교도도 꽤 많다. 자카르타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한 두쿤은 “최근정국이 불안해지면서 정치인이나 이슬람 지도자가 많이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방에는 알라신말고도 부처님 하나님 힌두신이 모두 모셔져 있었다. 중동지역을 기반으로 한 이슬람이 인종과 풍토가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세를 넓히며 변형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였다.

이슬람과 이종교, 이슬람교 내부의 갈등이 없지는 않다. 아체 암본 등지에서는 기독교도 등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분쟁이 민족갈등과 겹쳐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300여종족이 1만7000개 섬에 살고 있는 특수한 지리적 여건상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슬람단체는 최근 부패스캔들에 말린 와히드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싸고 찬반 양론으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족자카르타 가자마다대학 초빙교수로 머물고 있는 양승윤(梁承允) 외국어대 마인어과 교수는 “정부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각 지역의 독립요구나 인종분쟁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온 이슬람이 차츰 강경노선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학교 '프산토렌'▼

기숙사식 이슬람학교 프산토렌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여학생들

4000만명 회원의 최대이슬람 단체인 압둘라흘 울라마(NU)는 1926년 기숙사식 종교학교 ‘프산토렌’에서 비롯됐다. 현재 전국에 1만여개 있다.

자카르타에 85년 설립된 프산토렌 ‘아시디퀴야’를 찾았다. 1.5㏊ 면적에 남녀별 교실과 기숙사, 도서관 등 6개 건물이 있다. 중 고 대학생 2500명에 교사는 200명. 학교에 따라서는 초등학교와 고아원을 갖춘 곳도 있다.

무하마드 이스칸다르 교장(46)은 “도덕성을 갖춘 이슬람 신자를 키우는 한편 각자의 전문능력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고 설명한다.

초등학생때 집을 떠나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수행이나 마찬가지.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 아침식사 전 종교학습, 오후 1시까지 정규교육을 받는다. 식사 후에는 과외활동과 외국어교육을 하며 저녁 기도로 일과를 마치고 10시에 취침한다. 1년에 세 번, 일주일씩 휴가 때 집에 간다. 월 수업료는 기숙사비를 포함해 16만5000루피아(약 2만원).

고교 2년생 마울리아양(15)은 “현대식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거기 다니면 마약폭력 등에 휩쓸리기 쉽다”면서 “남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며 신의 뜻에 따라 지내는 이곳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현지진출 한국기업 종교-문화적 배려 신경▼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기업은 LG전자. TV 냉장고 세탁기 등 LG가전제품은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브랜드다.

1990년에 진출해 수출전용 부품공장과 내수용 완제품공장을 둔 LG전자의 성공은 현지 종업원 4800여명에 대한 종교문화적인 배려도 한몫하고 있다.

LG공장에는 800여평의 중앙기도실이 있다. 이슬람교도 종업원들은 여기에서 오전 점심 오후 등 하루 세차례 기도한다. 중앙기도실 외에도 각 라인별로 기도실이 있는데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다. 종업원과 소비자인 인근 지역 주민에게 종교활동의 편의를 줌으로써 친근감을 갖도록 하고 있다.

여직원의 이슬람식 스카프 착용이 고민거리를 안겨주기도 했다. 율법에 따라 스카프를 쓰고 작업하는데 생산설비에 말려들어가면 사고가 나기 때문. 금지할 수도 없었다. 결국 스카프를 쓰되 끝부분은 옷 속에 넣도록 했다.

이슬람 전통 문화와 현대적 생산공정 사이의 고민도 있다. 부품공장인 LG―EDI의 김기인(金基仁)법인장은 “하루 세 번의 기도시간마다 작업 흐름이 끊기는 것이 문제”라면서 “특히 연중 한달간 계속되는 라마단 단식기간 중에 생산성이 크게 떨어져 일용직을 별도로 고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개요

수도:자카르타

정부형태:대통령중심제

면적:190만㎢(한반도의 약 9배)

구성:자바 수마트라 등 5개의 큰 섬과 1만7000개(무인도 7100개 포함)의 작은 섬

인구:2억2478만명(2000년 7월, 세계 4위)

민족:자바(45%) 순다(13.6%) 아체 바탁 발리 등 300여 민족

종교:이슬람(87%) 기독교(6%) 가톨릭(3%) 힌두(2%) 기타(2%)

언어:인도네시아어(공용어) 외에 500여종

1인당 GDP:2800달러(1999년)

기후:열대성 몬순, 고온 무풍다습

주요자원:석유 천연가스 목재 주석 금 은 고무

▽약사

400만년전 직립보행 원인 거주(자바원인 화석 발견)

1세기경 인도 상인 통해 힌두문화 유입

644년 말라유 힌두왕국 성립

7세기 말 수마트라에 스리비자야 불교왕국 건설

13세기 동부자바에 힌두왕국인 마자파히트왕국 성립

13세기 초 이슬람교 유입

15세기 초 말라카 이슬람왕국 출범

1511년 포르투갈, 말라카왕국 점령

1602년 네덜란드가 점령

1942년 일본이 점령

1945년 독립·수카르노 초대 대통령 취임

1967년 수하르토 집권

1998년 수하르토 퇴진

1999년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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