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건강]온몸이 '파김치' 만성피로는 질병의 신호

  • 입력 2001년 5월 6일 18시 44분


◇간염 당뇨 초기 가능성, 스트레스 불안도 원인◇

“이런, 또 지나쳐 버렸네.”

며칠 전 오후 지하철에서 깜빡 졸다 눈을 뜬 회사원 김모씨(32)는 후다닥 전동차에서 뛰어내렸다. 쏟아지는 잠에 취해 내려야 할 정거장을 한참 지나쳤기 때문. 얼마 전에는 회사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회식자리에서 졸다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조는 바람에 ‘수면제’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씨. 수개월째 이같은 증세가 계속되자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야간에 수면시간을 늘리고 보약과 비타민까지 먹는 등 나름대로 ‘피로 퇴치법’을 사용해봤지만 피곤에 찌든 몸은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 있을 뿐 생기를 되찾지 못했다. 최근 병원을 찾은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만성피로’ 증세.

▽만성피로는 왜 생길까?〓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대부분의 피로는 스스로 원인과 해결책을 알 수 있다. 잦은 야근, 수면부족, 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생긴 ‘일과성 피로’는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통해 빠른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휴식을 취해도 피로가 사라지지 않고 수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의학적으로 피로가 한달 이상 지속될 경우 ‘지속성 피로’, 6개월 이상 계속될 때는 ‘만성피로’로 분류한다. 만성피로의 원인은 대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만성피로 원인의 30% 정도인 신체적 요인은 각종 질환의 ‘사전징후’다. 결핵, 간염, 당뇨, 갑상선질환, 폐질환, 빈혈, 암 등 많은 질병의 초기 증세 중 하나가 극심한 피로다.

또 심한 스트레스, 불안 및 우울증 등 심리적 사회적 요인도 원인 중 30∼40%를 차지한다. 이밖에 원인을 알 수 없이 피로증세가 지속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피로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 가운데 만성피로로 판명나는 환자는 전체의 10∼20% 정도.

▽만성피로의 치료법〓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단번에 완치시킬 수 있는 ‘특효약’은 없다. 따라서 병원에 가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 지속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또 충분한 수면, 가벼운 운동, 규칙적인 식사 등 피로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원인을 제대로 모른 채 ‘그저 피곤한 탓이려니…’하고 피로회복제와 카페인이 많이 함유된 드링크를 장기 복용하는 것은 금물. 서너시간의 ‘반짝효과’는 있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더 피곤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근육통 인후통등 동반땐 만성피로 증후군 의심◇

▽만성피로증후군이란?〓‘만성피로증후군(CFG:Chronic Fatigue Syndrome)’은 일상생활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정도의 극심한 피로가 뚜렷한 이유없이 반복되는 점이 특징. 하루 출근하면 3,4일을 쉬어야하는 경우도 있다.

바이러스 감염, 면역기능 장애,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원인치료가 불가능해 대부분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만성피로증후군 진단을 받는 경우는 만성피로 환자의 0.5∼1% 정도로 낮은 편. 단순히 원인 미상의 장기피로가 모두 만성피로증후군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기억력, 집중력 저하 △인후통 △목이나 겨드랑이의 임파선 통증 △근육통, 관절통 △새로운 두통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음 △운동 이후 하루 이상 지속되는 심한 피로 중 4가지 이상의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반복돼야 한다.

(도움말〓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신호철교수, 한림대의대 평촌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윤종률교수, 고려대구로병원 가정의학과 홍명호교수)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만성피로 증후군은…◇

■일상생활 어려운 일종의 장애질환, 전문치료 받아야

여러가지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탓인지 최근 피로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 현대인의 피로증상을 건강코너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인 듯 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피로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다름 아닌 대부분의 환자들이 ‘만성피로’와 ‘만성피로증후군’을 혼동한다는 점. 예를 들어 병원의 피로클리닉을 찾는 상당수의 환자들은 “나는 만성피로증후군에 걸렸다”며 아예 ‘자가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또 병원을 찾기 전에 검증되지 않은 각종 약물이나 의료기구 등을 구입해 효과를 알 수 없는 엉터리 치료를 받고 오는 경우도 있다. 만성피로와 만성피로 증후군은 분명히 다르다.

만성피로는 원인에 관계없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반면 만성피로증후군은 만성피로를 유발하는 드문 원인질환의 한가지. 즉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원인이 확실하지 않지만 극심한 피로로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주는 일종의 ‘장애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험이 많은 의사에게 전문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환이다.

반면 만성피로는 주의깊게 살펴보면 대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원인이 확인되면 비교적 치료가 어렵지 않다.

신호철(성균관대의대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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