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아줌마'가 끝난 후 MBC 일요아침드라마 '어쩌면 좋아'팀에 합류한 강석우씨(45)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장진구 잔영'이 조금은 불편하지 않을까.
"드라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시청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오래가겠죠. 관심없었던 사람들은 쉽게 잊을테고."
조금은 허무하지만 지당하신 말씀이다.
사실 강석우씨는 자신도 그 잔영이 적어도 10년은 지속되리라 예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드라마가 끝난후 "앞으로 10년을 살아갈 밑천을 얻었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으니까.
단순히 장진구 연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아줌마들이 달리 보여요."▼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 드라마가 한창 진행중일때 그의 더할나위 없는 장진구 연기에 탄복한 시청자들에 의해 드라마 제목을 '아저씨'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드라마 홈페이지에 심심치 않게 올랐다고 한다.
'장진구 보다 못한 놈'이라는 유행어까지 나오게한 진짜 주인공을 앞에 두고 기자도 피식 웃음이 났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지만 그가 아니, 장진구가 얻은 뜻밖의 높은 인기는 충분히 시비를 걸만한 일이다.
그는 최근 백상예술대상에서 인기상까지 탔다.
"사실 장진구가 최고 나쁜 놈이죠. 그런데 묘한 것이 정작 아줌마들은 장진구를 대놓고 미워하기는 싫어하거든요. 아줌마들의 취약점이 그거 같아요. 자기 인생을 확실하게 살기 위해 분기탱천해서 일어나면서도 내 남편같은 장진구한테 완전 등돌리지는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진짜 미운놈으로 오삼숙(원미경분)의 오빠 오일권(김병세분)을 꼽으면서 장진구는 귀엽다고 미화시키는게 또 아줌마들이거든요. 이게 아이러니에요."
아무튼 뜻밖에 아줌마들이 장진구를 너무 사랑해버리는 바람에(?) 그는 주부대상 TV토크 프로그램인 '행복채널'의 MC로서 본격적으로 아줌마들앞에 섰다.
물론 1년여 전에 주부들이 보낸 사연을 소개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의 DJ를 맡았었기에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그래서 드라마 '아줌마'를 하면서야 비로소 주위의 아줌마들이 달리 보이더라고 한다.
"아줌마는 자리가 나면 멀리서 가방던져 놓고 달려간다는 우스개처럼 솔직히 저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죠. 방청객들로 오는 주부들도 예전에는 웬지 찌들고 답답해보이기까지 했는데 이제 보니 다들 방송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인상까지 밝아 보이더군요."
사실 엄연한 사회의 한 계층임에도 이제까지는 '아줌마'라는 호칭에서부터 행동거지까지 희화화된 경향이 있었다고. 드라마를 통해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보이지 않던 아줌마세력들이 양지로 올라온 느낌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직 음지에 있는, 장진구보다 못한 남편에게 시달리고 살면서도 막상 이혼을 하는 절차를 몰라 망설이는 여성들을 위해 그는 이왕이면 이혼절차와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자고 작가에게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 과정도 자세히 알게 되고, 이혼녀로 새출발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그려져 드라마로 인해 이혼을 결심한 여성들이 늘었을 것이라고 그도 생각한다.
그래서 '이혼을 조장한 드라마'라는 비난은 억울하다. 그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집과 방송국밖에 모르는 충실한 가장으로서 물론 아무에게나 이혼을 권하진 않는다.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에게만 한다.
'아줌마'가 한창 진행될때 지인들과 드라마의 결말을 점쳐본 적이 있다. 못난 장진구는 그렇다 치고, 처가쪽 재력과 뛰어난 처세술로 승승장구하던 오일권은 여자문제나 표절시비도 가볍게 처리하고 결국 정치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세상 돌아가는 현실을 볼때 충분히 그럴 수 있을것 같았다.
"그게 우리나라죠. 정치권의 현실이고. 저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오일권이 정치권으로 나가는데 제자와의 스캔들이 드러나서 공천이 안되면서 그때 급히 구한 인물이 장진구다, 장진구도 국회한번 가자, 그러면 국민들이 더 공감할거다 싶었죠. 사실 국민들이 볼때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국회가는거 아녜요. 물론 국회의원들은 뜨끔해하지도 않고, 그냥 왜 우리를 저렇게 비하시키나 그러겠지."
그렇지만 오일권·장진구같은 정치인들 앞에는 이제 낙천·낙선운동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장진구, 아니 강석우씨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좋죠. 그런데 낙천·낙선운동을 통해서 드러나 시민들의 의식조차도 정치권에서 흐지부지되는게 참 아쉬워요. 특히나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간 사람들, 정말 사람도 아니죠."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에 다니면서 데모도 했다는 그의 정치권인사들에 대한 비판은 계속 이어졌다.
"전두환씨도 주위 사람들한테는 의리도 있고 좋다 이거야. 그렇지만 그건 깡패보스 짓이지 대통령으로서 필요한 덕목은 아니잖아요. 지난번에 광주에 내려가서 술판벌인 사람들도 자신이 도덕성을 요구받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모른다는게 문제에요. '사람이 한번 실수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아 그럴수 있죠.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여전히 일반인의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안되죠. 생활이나 행동부터 모범이 돼야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나 규범을 국민들이 따르는 거지. 안그래요? 어,얘기가 다른데로 갔네."
▼탤런트와 정치인의 공통점▼
지난 3월 13일 '아줌마'팬이라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요청으로 그는 다른 출연진들과 함께 이총재와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총재에게 "정치인과 탤런트의 공통점은 국민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데 신경을 쓴다는 것"이라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얘기를 꺼내려고 "드라마 덕분에 이회창 총재도 만났다는데…."라고 생각없이 물었다가 그에게 퉁명스러운 소리를 들어야했다.
"그 사람이 덕분에 우리를 만난거죠. 그 사람을 '덕분에' 만날 일이 뭐 있어요?"
잠시 썰렁해진 분위기 수습차 정치인과 코미디언의 공통점·차이점에 대한 우스개 소리를 꺼내며 나름대로 연구한 정치인과 연기자의 차이점에 대한 설을 풀었다.
정치인과 연기자는 똑같이 연기를 하지만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기자는 안다는 것, 그게 다르지 않냐고 운을 뗐다.
모 서울시장 후보의 스탭으로 일하면서 아주 가까이에서 정치인을 지켜본 적이 있다는 그는 "왜요. 다 알죠. 정치인들은 정말 훌륭한 연기자들이죠."라고 말을 받았다.
그는 장진구와 오삼숙을 정부지도층과 서민으로 대비하기도 한다. 장진구는 어려운 용어만 아는 사람이고 오삼숙은 그런 용어만 모르는 사람인듯, 정부가 숫자놀음으로 국민을 속이려고 해도 국민들은 숫자만 모르지 경제가 어떤지는 다 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미난 얘기 하나. 장진구라는 캐릭터의 한 특징인 '말 한박자 쉬고 눈동자 이리저리 굴리는 답답하고 얄미운 눈빛'은 그가 강아지를 보며 발견해냈단다.
처량하게 보이려고 눈치볼때 그러더라는 것이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평소에도 눈동자가 불안하듯 강아지도 그렇단다.
그러니 적어도 장진구같은(혹은 보다 못한)놈이라는 이 시대 최악의 욕을 듣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볼 때 쓸데없이 눈동자를 자주 움직여서는 안된다. 말도 더듬지말고 당당하게!
한혜영/참여사회 객원기자
(이 글은 참여사회 5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구독문의:723-1246, http://www.peoplepower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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