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운전을 할 때 두 가지 심리적 과정을 동시에 경험한다. 우선 ‘나’를 자동차와 동일시한다. 예를 들어 크고 비싼 자동차를 타면 그만큼 자기가 대단한 존재이고 남들이 그렇게 봐 줄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그런 경향이 강할수록 자동차를 경계로 ‘나’와 ‘남’을 더욱 분명하게 구분하게 된다. 다른 자동차를 포함해 자동차 밖의 대상을 경쟁 상대 혹은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는 자기애로 가득 찬 자동차라는 ‘익명의 기계’가 된다.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욕을 하더라도 그 때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교통 상황을 개선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째 종교 단체의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의 얘기다. 한동안 버스 뒤에 단체이름과 로고가 새겨진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는데 그 스티커를 붙이고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도저히 법규를 위반할 수가 없어서 지금은 떼고 다닌다고 한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려면 익명성 속에 숨어야 하는데 이 익명성을 깨기 위해 정부 기관과 종교 단체의 차는 뒷 유리창에 단체 이름과 로고가 세겨진 스티커를 붙이도록 하면 어떨까. 기업도 스티커를 붙이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통 심리 교육을 실시하자. 학교는 학생을 통해 학부모의 차에 학교 스티커를 붙이도록 권장하자.
동료 교수 한 분이 일본에서 ‘내가 만약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아이에게 전화하십시오’라는 글을 전화번호와 함께 붙이고 다니는 사람을 본 경험을 들려주었다. 교통법규 위반이 소속 기관과 기업의 이미지에 먹칠을 할 수 있는 반면 친절한 양보 운전 한번으로 오히려 이미지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티커를 붙이면 운전자 사이에 무언의 대화를 높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환경 문제와 교통 문제 사이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딜레마다.
사회적 딜레마는 짧은 시간에 내 이익은 많으나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는 사례와 내가 지금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결국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를 택한다는 것. 모두가 이런 선택을 하면 전체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데 지금 우리 현실이 그렇다.
예를 들어 도로가 막힐 때 네거리를 가로막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앞차 꽁무니에 차를 갖다 대는 것은 전체 도로상황이 어떻게 되든 지금 내가 몇 분 더 빨리 가보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 순간에 이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가 비슷한 ‘계산’의 결과로 다음 번 네거리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한다.
이런 행동은 타인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다. 내가 양보하면 다른 운전자도 양보할 것이라고 믿지 못하므로 지금 당장 내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하게 되는 것이다.
스티커뿐만 아니라 자동차 번호판도 익명성을 낮추고 운전자 사이의 무언의 대화를 넓히는데 기여할 수 있다. 환경교육을 담당하는 필자는 가능하다면 반달곰 그림이 새겨진 ‘공주대 환경교육’이라는 번호판을 갖고 싶다.
자동차에 스티커를 부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몇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 우선 스티커 부착을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 되게 하는 것이 좋다. 취지에 찬성하더라도 자신의 소속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스티커는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 뒷 유리창에 붙였을 때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크기를 다양하게 만들어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로를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도로교통법과 도로체계를 수정해 가 듯 운전 행태도 연습을 통해 차츰차츰 바꿀 수 밖에 없다. 운전면허 발급과 갱신 과정에 교통심리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시키고 손해보험협회가 그런 내용의 교육자료를 보험가입자에게 보급하면 어떨까.
환경 문제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을 대하는 사람의 문제이 듯 교통 문제도 궁극적으로는 도로의 문제가 아니라 도로를 달리는 사람의 문제다.
이재영(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국회환경포럼 환경교육활성화위원회 책임간사)
▼당신의 운전 모습은? 도덕운전지수 체크▼
《사람들은 운전할 때 흔히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내가 끼어들 땐 급한 일이 있어서고, 다른 사람이 끼어들 땐 무례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왜 그 사람에게도 급한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의 도덕운전지수는 얼마인지 한번 확인해 봅시다. (항목당 1점)》
당신의 도덕운전지수(Moral Driving IQ)는?
□ 차 막히면 차선을 왔다 갔다 하며 조금이라도 앞서간다 |
□ 다른 차가 끼어 들려 하면 그렇지 못하게 간격 좁힌다 |
□ 약속에 늦으면 초조해 천천히 가는 앞차를 몰아 부친다 |
□ 끼어 든 차가 천천히 가면 뒤에서 박아버리고 싶어진다 |
□ 신호도 없이 갑자기 끼어 드는 차를 보면 욕 나온다 |
□ 친구를 태우고 가면서 자랑삼아 곡예운전 할 때가 있다 |
□ 빠른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을 때 음악처럼 급히 운전 |
□ 밤에 운전하면 속도를 더 낸다 |
□ 천천히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을 콱 치고 싶을 때가 있다 |
□ 뒷차 운전자가 거칠게 몰면 오히려 속도 줄여 보복 |
□ 다른 차에 둘러싸이면 빠져 나오려고 확 돌진하고 싶다 |
□ 스트레스 받으면 다른 운전자에게 화 내고 거칠게 운전 |
□ 마음복잡한데 다른 차가 끼어들면 모두 쓸어버리고 싶다 |
□ 다른 운전자가 나에게 뭐라 하면 맞받아 욕을 퍼붓는다 |
□ 다른 운전자가 거칠게 운전하면 나도 덩달아 거칠어진다 |
□ 다른 운전자가 무례하게 운전하면 증오하거나 미워한다 |
□ 서툰 운전자를 보면(예, 금방 차선 못 바꾸는) 비웃는다 |
□ 급정거 차와 부딪힐뻔 하면 나중에 박고 싶어진다 |
□ 다른 운전자가 교통신호 안 지키면 험한 말이 튀어나옴 |
□ 시간이 촉박하면 끼어 들거나 노란 불에 자주 건너간다 |
○0∼5점:도로에서 당신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군요.
○6∼10점:아침에 한번만 먼저 양보운전을 해 보세요.
○11∼15점:가급적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세요.
○16∼20점:오늘 당장 차를 팔고 면허증을 반납하세요.
출처:Leon James & Diane Nah의 Dr Driving
▽자문위원단〓내남정(대한손해보험협회 상무)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국무총리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 전문위원)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특별취재팀〓최성진차장(이슈부 환경복지팀장) 송상근( 〃 환경복지팀) 서정보(문화부) 이종훈(국제부) 송진흡(이슈부 메트로팀) 신석호기자(사회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리젠트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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