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작전세력이 붙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상승행진을 하던 주가가 왜 갑자기 꺾였는지 이해가 됐다.
▼글 싣는 순서▼ |
(상) "등록직후 주가 띄워드릴께요" 유혹 (하) 실적 뒷전…작전에 춤추는 주가 |
코스닥 등록과 동시에 벌어지는 주가조작의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의 몫이다. 간혹 모럴해저드에 빠진 기관 펀드매니저들이 작전세력의 물량을 받아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투를 잡은 개인들이 피해를 본다.
▽주가조작 수법〓올해 초 코스닥에 등록된 A기업의 주가 그래프를 보면 ①등록일 이후 주가는 거래가 거의 없이 8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다. ②결과적으로 주가는 공모가보다 4.5배나 올라있다. 이때까지 작전세력은 보유물량을 전혀 팔지 않는다. ③개인투자자들이 차익실현을 위해 9일째부터 공모주(전체의 15∼20%) 중 일부를 내놓으면서 대량거래가 시작되지만 작전세력은 당분간 이 물량을 받아주면서 주가를 방어한다. 대주주와 창투사 지분이 보호예수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유통물량은 대부분 작전세력에게집중돼 시세조종은 어렵지 않다. ④이때부터 개인투자자들은 ‘주가의 하방경직성을 확인했다’고 오해하고 매수에 뛰어든다. 작전세력은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공모가 이하로 넘겨받은 물량을 털어내 막대한 차익을 챙기고 ⑤주가는 하락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작전이 붙지 않은 등록기업의 주가 패턴은 이와 크게 다르다. 지난해 7월 등록된쎄라텍은 지난해 매출 469억원, 순이익 135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실적을 갖고 있었지만 등록이후 곧바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패턴을 보였다. 세력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관들이 등록 이후 곧바로 물량을 털어냈고 받아주는 세력이 없자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결국 실적은 뒷전이고 세력이 붙느냐 안붙느냐에 따라 주가가 결정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코스닥 등록기업의 주가는 실적이 아니라 세력이 만든다”는 말이 시장에서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감시도 힘들어〓주가조작은 통상 ‘매집→주가올리기→물량털기→주가하락’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비해 등록시점에 벌어지는 시세조종은 장내 매집단계가 생략된 채 장외에서 물량이 미리 확보되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 코스닥시장의 주가감시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증권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이 위장 분산된 상태에서 브로커에게 주식이 넘어가기 때문에 작전세력이 누구인지, 시세조종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가려내기가 매우 힘들다”며 “등록시점의 주가조작은 일반 주가조작보다 훨씬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당국의 감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최근에는 주가까지 오름세를 타고 있어 작전으로 한몫을 챙기려는 브로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등록을 앞둔 기업 대주주들의 ‘낙점’을 받기 위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브로커들이 대주주로부터 넘겨받는 주식값도 공모가 이상까지 올라가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대주주 지분을 지나치게 묶어 놓기 때문에 위장분산 유혹이 크고, 일단 위장분산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작전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코스닥시장에서는 심리전과 머니게임 때문에 적정주가 수준을 잊어버리는 ‘주가착시’ 함정에 빠지는 경향이 크다”며 “기업의 내재가치를 꼼꼼히 따져보는 투자자세만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