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용덕/'언론 길들이기'

  • 입력 2001년 5월 8일 18시 42분


2월8일 시작된 세무조사와 신문고시의 강행에 대해 유력 신문사들과 야당은 언론탄압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해 왔고, 정부와 여당은 공평과세와 경쟁촉진을 위한 언론개혁이라고 주장해왔다. 서울지방국세청장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15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기간을 6월19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히면서, 그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번 세무조사가 일견 타당하고 언론개혁 차원에서 진행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정부의 진정한 의도는 정책 입안자의 마음을 열어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다고 해도 그 사람의 행위나 나타난 결과를 통해 그가 의도하는 바를 추측할 수는 있다. 대통령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시작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신문고시를 강행한데서 우리는 언론개혁의 이름으로 포장된 언론 길들이기의 냄새를 맡는다. 여러 정부기관들이 똑같은 시기에 언론 개혁 에 나선 것이 우연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정기법인세 조사라고 밝혀왔다. 원래 정기적인 세무조사는 해당 산업 전체 기업의 3%에 한해 실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재 언론사 세무조사는 중앙 일간지 대부분과 3개 방송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언론산업 전체를 조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번 조사는 정기적인 세무조사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는 뜻이다.

▼세무조사 연장 이해 안가▼

세무조사 인원도 정상적인 조사를 넘어섰다. 국세청은 조사국 직원 400여 명을 23개 언론사에 투입해 세무조사를 벌여 왔다. 매출액 수조원 규모의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보통 10여 명의 조사요원을 투입해 단기간에 조사를 끝내온 것이 국세청의 관례라고 한다. 거기에 비해 매출액이 수천억원인 언론사에 수십 명씩을 투입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세무조사 기간은 또 어떤가. 국세청은 당초 2월 8일 언론사 세무조사를 시작해 5월 7일 끝내겠다고 했다가 다시 6월 19일까지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사건 기업이건 1년의 거의 절반을 세무조사를 받는다면 어떻게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서울지방국세청의 중간 조사결과 발표를 보면 조사의 범위도 정기 법인세 조사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무조사 결과 드러난 내용은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고발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련법상 밝힐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행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한 사례를 담은 보도자료까지 내놓은 국세청의 친절 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정황들로 미뤄볼 때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사실상 특별 세무조사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특별 세무조사는 국세청이 납세자의 탈세 혐의를 잡았을 때 한해서만 실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국세청이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를 탈세 혐의를 잡고 실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2월 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한동 총리의 답변을 보면 알 수 있다. 국세청은 특별 세무조사가 아니라고 강조하기 위해 정기 법인세 조사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가지 정황은 국세청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언론개혁 시장에 맡겨야▼

결국 이번 세무조사는 언론개혁이 아니라 언론 길들이기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백 번 양보해서 현재의 세무조사가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언론개혁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정부가 주도하는 언론개혁은 득보다 실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시장에서 소비자가 신문과 같은 재화를 사는 행위는 투표를 통해 당선된 대표가 행하는 어떤 행위보다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정당하다. 바로 그 이유로 언론개혁이 정말로 필요하다면 그것은 시장에 맡겨져야 하고 정부는 시장의 기능을 강화하는 제도 를 보완하는 일만 해야 할 것이다.

세무조사는 정부가 가진 가장 무서운 칼 중의 하나이다.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구실을 대든 그 칼날에 다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세무조사라는 칼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한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의로운 명분이 있을 때만 사용해야 한다.

전용덕(대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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