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왜곡교과서 재수정 요구]민간전문가 긴급좌담

  • 입력 2001년 5월 8일 18시 42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해 8일 일본 정부에 전달된 정부의 수정요구안은 만족할 만한 수준일까. 정부의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에 참여하지 않았던 학자들과 시민단체 인사의 좌담을 통해 이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대응책을 모색해본다. 좌담에는 고려대 조광(趙珖·한국사학과) 교수, 성신여대 구양근(具良根·중문학과) 교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양미강(梁美康) 총무가 참석했다.》

▽조교수〓수정요구안을 보니 일본군위안부 관련 문제 제기가 강화됐고 일부 표현에서 객관성을 유지해 일본을 효율적으로 설득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개별 내용에 있어서는 그동안 학계 등에서 꾸준히 지적돼 온 것들이 수용됐기 때문에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교과서 내용의 오류에 대한 구체적 지적은 교과서 저자가 제시한 논리구조 안에서의 문제 제기일 뿐이다. 논리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문구의 지적만 해서는 안된다. 각론적 검토와 병행해 역사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총론적 수정 요구를 강화해야 한다.

▽구교수〓후쇼샤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빠뜨린 것도 분개할 일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조선반도 흉기론’이다. 이는 조선반도는 항상 일본을 향해 내밀고 있는 ‘흉기’라는 주장이다. 또 3·1 독립운동 부분도 빠져 있다. 심각한 것들이다.

▽양총무〓일본 교과서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없다. 정부는 이를 강력히 지적해야 한다. 그들이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통해 어떤 학생들을 만들어 가려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새 공민교과서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조교수〓새 교과서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배치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총론에서 지적해야 한다. 인류는 후손들에게 평화를 가르칠 의무가 있는데 일본의 왜곡 교과서는 전쟁을 미화하고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내는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

▽양총무〓군위안부 문제는 93년 일본 정부가 인정한 바 있다. 이번에 스스로 번복한 셈이다. 유엔 등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점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조교수〓검인정된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 관계 사항에 한정하더라도 25개 이상의 오류가 확인되고 있다면 이는 교과서 재검정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일본은 이번의 교과서들에 대한 재검정을 단행해야 한다.

▽구교수〓일본측은 ‘내정간섭’이란 대응 논리로 맞서고 있다.

▽조교수〓내정간섭이 아니라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일본 교과서는 국내 문제를 서술한 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국제 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이 경우 당사국간 협의와 토론을 통해 기술해야 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확립된 원칙이다. 내정간섭이 아니다. 일본은 1982년 ‘근린제국조항’을 통해 한일관계 등에 관한 문제가 일본 국내문제만은 아님을 실천적으로 확인했다. 이를 망각하고 내정문제라고 재검정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양총무〓내정간섭 여부를 떠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느냐를 따져야 한다. 전쟁을 미화하는 식이라면 인류의 일원으로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구교수〓일본이 재검정을 거부할 경우 적극 대응에 나서야 한다. 민간 차원에서 일본 내 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지원하거나 국제 사회를 통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일본 내에는 양심세력이 많다. 일본 전체를 적으로 만들지 말고 양심세력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조교수〓단기적으로는 일본 정부에 재검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국제 연대를 통해 일본을 도덕적으로 압박해야 한다. 왜곡 교과서 편찬에 참여한 사람을 입국 금지시키고 이들을 지원한 기업체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 국제 연대를 통한 공동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에서 공동 대응을 제안했을 때 정부가 거절한 것은 문제다.

▽양총무〓사실 이 문제는 지난해 10월 불거져 나왔다. 지난해말 국내 역사학계에서 성명도 발표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에야 여론에 떠밀리다시피 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의 역사 인식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98년 한일공동선언 때 정부는 “과거사가 모두 해결됐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신년 메시지를 통해 “한일간 불행했던 과거사는 말끔히 정리됐다”고 했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니 교과서 문제가 터졌을 때 미온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조교수〓검정 통과 후 40여일간 연구했다 하더라도 정부 대응의 임기응변성을 변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문제가 용두사미식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구교수〓외교관계상의 문제도 있고 하니 정부쪽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학계와 민간단체가 주도권을 쥐고 밀고 나가야 한다.

▽양총무〓문제는 네트워킹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학계는 학계대로가 아니라 정부 학계 시민단체가 네트워크를 구성해 분산된 힘을 결집시켜 일본 정부로 하여금 재검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해야 한다.

▽조교수〓유럽에서도 국가간 공동 학술 운동이 활발하다. 스칸디나비아 3국도 학자들이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를 만든다.

▽양총무〓학생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과 관련된 특별 수업안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알리고 있다. 한일 교사들이 공동 수업을 통해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사실 일제 하 피해사실에 대한 종합적인 진상규명 보고서 하나 없는 현실이다. 일본의 잘못도 바로잡아야 하지만 우리의 문제도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국사교과서는 어떤지도 짚어볼 문제다. 일본에서 늘 듣게 되는 얘기가 “너희 교과서는 어떠한가”인데 할 말이 없었다.

▽조교수〓일본과의 관계사 서술에 있어서도 그 객관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일본인 연구가와 공동 집필하는 문제도 검토할 수 있다. 또 일본이 교과서를 통해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인류보편적 가치를 확인하고 밝혀주는 일은 미래 아시아의 평화뿐만 아니라 ‘일본의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미래의 일본이 이성적 문화대국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정리〓서영아·이진영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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