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답게(?) 그의 하루하루는 잿빛처럼 칙칙하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후회도 크다. 작년보다도 못한 성적이 나오면 어쩌나 싶고 차라리 지난 번에 한 단계 낮춰 그냥 진학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어지러운 탓이다.
누군가 옆에서 “아니다. 넌 해낼 수 있다. 포기하지 마라”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혼자서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앞에서 격려하며 끌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린 너한테 크게 기대 안한다. 그러니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아무 대학이나 들어가렴”하시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부모님한테 별 볼일 없는 존재란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뭘 해도 칭찬에 인색하고, 자상하고 부드러운 손길 한 번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특별히 잘못한 게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단지 무덤덤한 것뿐이란 것도 안다. 그렇지만 그 무덤덤, 무관심에 화가 나는 걸 어쩌랴.
그에게 자신이 원하는 걸 부모님에게 명확히 전달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이 원하는 게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가족 사이의 오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흔히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이해의 폭도 크다고 생각한다. 말 안해도 눈짓 하나, 표정 하나로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걸 다 알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오히려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이해의 폭도 좁은 게 가족 관계이다. 자기 관점에서 판단해 조금만 그 기대치가 채워지지 않으면 쉽게 분노와 피해 의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표현 수위도 한층 거칠고 노골적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치는 감정의 여과 장치가 가족 사이에서는 작동이 안되는 탓이다.
이 재수생의 경우에도, 부모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보니 원망도 컸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면담에서 서로에 대한 솔직한 기대치를 털어놓도록 했다.
예상했던 대로 부모는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가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단지 혹시나 부모의 기대가 부담이 될까봐 조심한다는 게 아들 눈에는 무관심으로 비쳤던 것이다. 아들 역시 부모가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고 격려해 주기를 바란 건 물론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