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 장편소설
355쪽 8000원 창작과비평사
만행의 작가 김성동(54)씨가 6년 만에 새 소설을 썼다. 구도의 길에서 고뇌하는 젊은 수도승과 꽃다운 여대생 사이의 아련한 사랑 이야기다. 수구초심(首邱初心)이려나. 오랫동안 머물던 역사소설을 떠나 ‘만다라’(1978) 이후 20년 만에 불교소설로 돌아왔다.
소설은 젊은 승려 능현(能玄)이 겪는 ‘꿈’의 초입부터 매력을 뿜어낸다. ‘숨 넘어가는 목어(木魚) 소리’와 ‘숨만 한번 크게 내쉬어도 금방 터져 버릴 것처럼 팽팽하게 펼쳐진 노을의 바다’가 보여주는 시적 관능에 숨이 막힌다.
거기에 ‘노을처럼 얄브스레한 꼭두서니빛’인 여자 반야가 나타난다. 애살포시 벌어진 입술, 물기 어린 목소리, 산나리꽃인 듯 순백인 종아리…. ‘아!’ 능현의 탄식에 절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하지만 모두가 능현의 눈에 잡힌 헛거미, 환상일 뿐이다. ‘어둠에 눌려버린 노을이 딸꾹질을 하며 절 마당 밑으로 잦아들고 있을 뿐’인 것을. 관세음보살. 능현이 단단히 결가부좌를 틀어보지만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어느 날 그 앞에 나타난 여대생 정희남은 꿈에서 본 반야의 현시였을까. 짧은 인연에도 능현의 마음이 속절없이 흔들리고 만다. 그녀가 떠나고 번민에 휩싸인 그에게 소포가 하나 도착하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 책 한 권이다. ‘아!’ 순간 능현은 문학에서 해탈의 화두를 발견한다.
하지만 공모에 당선된 첫 소설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그는 승적에서 제적당한다. 몇 해 동안 산사를 전전하며 고행하던 그 앞에 홀연히 그녀가 나타난다. 능현은 공양주를 자처한 그녀와 봄꽃처럼 달콤한 정분을 피우면서도 서방정토로 가는 수행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파계(破戒)인가. 파계란 ‘금강(金剛)처럼 굳은 믿음의 허물어짐, 신심의 추락’이지 ‘고깃덩어리일 뿐인 살과 살이 파고들고 또 끌어당기는 육체관계’가 아니다.
애욕을 정당화해 종교적 금기에 맞서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다. 홀연히 잠적해버린 반야를 찾아 저잣거리를 헤매는 능현의 고행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마지막 ‘사족’에서 이 모든 사건들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 아닌 양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꿈인가 하면 꿈이 아니요 / 꿈이 아닌가 하면 꿈이 아닌 것 또한 아니니 / 어이할고 중생이여 / 꿈을 꾼즉 깨어나기 괴롭고 / 깨어난즉 꿈을 꾸기 괴롭고여’
김성동씨는 50대에 쓴 이 작품을 “나의 첫 불교소설”이라고 의미를 두었다. 대표작인 ‘만다라’는 “방황하는 청년기에 통과제의로 썼던 졸렬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했다. 그가 머물던 암자가 급류에 휩쓸리는 와중에 이 원고를 목숨처럼 지켰고, 거처를 다섯 곳이나 전전하는 등 어려운 집필 여건을 감수했다는 말에서 각별한 애착이 전해진다.
사실 이 소설의 초반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자신을 문학으로 귀의하게 만든 한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실재했고, ‘목탁조’란 작품이 문제가 되어 자신이 종파에서 제적된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둘 사이의 구체적인 연분은 작가의 상상,혹은 바램의 소산이다.
요즘 김씨는 다시 입산할 기회를 고대한다. 자신에게 문학이란 평생 궁구할 이상이 아니라 임시로 머무는 정거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글쓰기란 평생 구도(求道)의 방편이 될 것이다. 미몽에서 깨어나 반가부좌 자세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능현의 마지막 모습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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