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살인 주부 강모씨. 지난해 딸아이 때문에 참 무던히도 속을 썩였다. 그때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돼, 학부모회에서 만난 한 엄마가 말했다. “요즘 애들은 중학교 2학년 때가 가장 무섭다는 거 아세요?”
‘무섭다’는 과장된 표현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사춘기적 반항을 그렇게 표현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요?”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방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느냐는 듯,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겪어보면 안다고 했다. 자기는 첫딸이 중학교 2학년 때 엄청나게 속을 썩였는데 둘째가 다시 그 학년이 되니 겁부터 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는 걸핏하면 지각을 하고, 머리를 가지고 별별 요상한 모양을 다 내고, 치마 길이가 터무니없이 짧아지고, 학교에서는 패를 지어 다른 아이를 왕따시키고, 기타 등등, 도무지 수용이 안 되는 일들만 하고 다녔다. 덕분에 담임선생으로부터 면담요청을 받은 것만 해도 서너 번은 됐다. 아직 1학기도 안 지났는데 그 정도였다. 사실을 알고 펄펄 뛰는 남편 진정시키랴, 아이가 행여 더 비뚤어질까봐 마음 졸이랴, 그녀는 하루하루가 고달팠다.
딸아이는 만나보니 똑똑하고 영리했다. 독립심도 강하고, 자기 주관도 뚜렷했다.
“그냥 한번 놀아보고 싶은 것뿐이에요. 가만 내버려두면, 3학년 때 가서는 다시 모범생으로 돌아가 있을 거고요. 엄마한테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도 절 믿지 못하고 걱정이 태산이니 선생님이 저의 어머니한테 말씀 좀 잘해주세요.”
아이는 똑 부러지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 정도라면 아이를 믿어도 좋았다. 그 엄마에게도, 때로 부모의 역할은 끝까지 아이를 믿어주는 거라는 뜻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그녀는 반신반의했다. 선뜻 ‘그렇게 하마’라고 하기에는 지금 아이의 모습이 너무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강력하게, 남편에게도 똑같은 뜻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부모가 함께 노력하기를 당부했다. 결과는 아이가 말한 대로였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신뢰하는지 안하는지를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안다. 그리고 부모가 끝까지 믿어주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많은 부모들이 조급증 때문에 아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건 마음 아픈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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