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코트의 마술사’ 강동희(35·기아)는 5시즌 동안 4차례나 어시스트왕을 차지했다. 지난달 끝난 2000∼2001시즌에는 사상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8개를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어시스트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뛰어난 기량 못지 않게 언제나 어시스트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두산의 정수근(24)에게 도루는 강동희가 생각하는 어시스트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기회가 있으면 다른데 신경쓰지 않고 과감하게 뛴다는 얘기다. 15일 잠실 LG전에서도 정수근의 이런 면모는 돋보였다. 팀이 9-6으로 앞선 9회초 2사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정수근은 볼넷으로 1루에 나갔다. 어차피 승리는 눈앞에 둔 상황. 도루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도 맞았다는 듯 그는 질풍같이 2루로 내달렸고 가쁜 숨을 고르기도 전에 내쳐 3루까지 훔쳤다.
하루에 2개의 도루를 보탠 정수근은 이날 현재 19개로 마르티네스(삼성)와 김수연(한화)의 공동 2위그룹을 9개차로 크게 따돌리며 1위 독주 체제를 굳혔다.
4년 연속 도루왕을 노리는 정수근의 올 시즌 목표는 자신의 역대 최고기록이었던 99년의 57개를 넘어 60개 이상으로 타이틀을 방어하는 것. 현재의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한다면 올해 72.2개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므로 너무 겸손하게 목표량을 잡아놓은 듯하다.
오히려 프로 최다 기록인 94년 이종범의 84개를 깨뜨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시즌 초반의 추세라면 도루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데는 조금 모자라는 상황. 하지만 올해 들어 워낙 상승세를 타고 있어 아무도 밟지 못한 고지에 얼마든지 도전해볼 만하다는 게 주위의 예상.
팀내에서 학구파로 통하는 정수근은 투수마다 투구모션을 일일이 분석해 둬 도루 타이밍을 잡는 데 더욱 눈을 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손이 베이스를 향해 들어가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대신 발이 먼저 나가는 훅 슬라이딩으로 도루 성공률을 끌어올렸다.
정수근은 “지난해에는 아웃될까봐 확률을 많이 따졌는데 올 시즌에는 더욱 자신 있게 뛰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