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일본 우경화' 미국이 부채질

  • 입력 2001년 5월 16일 18시 33분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는 일본 중시의 아시아 정책이 일본의 보수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워싱턴 외교가에 나도는 우려다. 미국관리와 외교전문가들이 일본과의 군사적 동맹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재무장을 촉구하고 과거사 문제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발언을 잇달아 하고 있기 때문.

미국의 민간 싱크 탱크인 랜드 연구소의 보고서도 그 중 하나다. 미 공군의 용역에 따라 작성돼 15일 공개된 ‘미국과 아시아’ 보고서는 “미국은 일본의 헌법 개정과 군사활동 범위의 확대 노력을 지지해야만 한다”고 권고했다. 이 보고서는 얼마 전 일본을 방문했던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에게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아미티지 부장관은 “현재 일본의 헌법해석은 미일간 협력관계에 장애가 된다”며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헌법의 해석을 변경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청했었다.

고이즈미 총리 집권 후 헌법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태도는 일본엔 ‘격려’로 비칠 수 있다.

미 법원이 일본의 군위안부로 동원됐던 아시아 국가의 여성들이 미국에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을 ‘판결한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14일자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도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미국의 한 외교소식통은 “요즘 들어 미국이 일본의 우경화를 비호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며 “부시 행정부 고위직에 일본통은 어느 때보다 많지만 한국과 중국 전문가는 거의 없다보니 이런 결과가 빚어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일본만 바라보면서 일본과 주변국들의 미묘한 관계는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기흥<워싱턴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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