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늘 작은바늘 보며 생각하는 여유 키워야
큰아이는 아직 시계를 볼 줄 모른다. 큰바늘과 작은바늘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왜 1에서 12까지의 숫자가 있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좋아하는 만화를 보기 위해서는 30분 기다려야 한다니까 30분이 얼마냐고 묻는다. 숫자 한 칸이 5분이니 큰바늘이 여섯 칸 가는 동안이라고 알려주니 “그렇게 오래?”라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잘됐다 싶어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TV 밑에 있는 숫자 시계를 보면 된단다. 아이는 디지털 시계에는 익숙한 모양이다. 하지만 시간의 개념은 없고 단지 신문에 적혀 있는 숫자(시간)를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 신기한 것이, 시계 보는 법을 그렇게 어려워하는 아이가 컴퓨터는 도사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CD롬을 척척 컴퓨터에 넣고 게임도 한다.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소프트웨어 정보를 듣고 사달라고도 한다. 급기야 e메일을 만들어 달라고 해 떠듬떠듬 자판을 치며 이모나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유치원에서 배운 모양이다.
요즘은 컴퓨터가 필수라 돈 내고 학원도 다닐 판에 유치원에서 컴퓨터를 가르친다니 환영할 일이지만 시계보다 컴퓨터를 더 쉽게 생각하는 아이가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컴퓨터는 빠르고 정확하다. 키 하나만 누르면 척척 알아서 바로바로 대답한다. 기다릴 것도, 생각할 것도 없다. 디지털 시계도 마찬가지다. 간단히 숫자 몇 개로 현재 시간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보고 인식하면 그만이지, 그 사이 생각할 공간이 없다.
아날로그 시계는 어떠한가? 시계를 보면 큰바늘과 작은바늘은 참 많은 정보를 준다. 지금의 시간, 약속된 시간까지 얼마가 남았는지, 오늘 하루가 얼마나 흘렀는지 초바늘까지 있다면 시간이 흐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그 안에는 생각할 수 있는 여지, 즉 사색의 공간이 있다.
우리는 빠르고 정확한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빠르고 정확해야만 하는 강박관념을 갖는 것 같다.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은 점점 생략되고 기능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은 점점 더 커진다.
난 아이가 은유와 사색을 즐길 줄 아는, 그래서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갖기 바란다. 생각하고 느끼는 기쁨을 갖게 하고 싶다. 오늘은 꼭 바늘 두 개 있는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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