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개그맨 김학래 · 임미숙 가족의 시장 나들이

  • 입력 2001년 5월 18일 11시 05분


◇“살아 숨쉬는 꽃게, 팔딱거리는 생선…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있어요!”◇

느지막한 나이에 결혼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외동아들을 얻은 개그맨 김학래·임미숙 부부의 아들 사랑은 각별하다. 바쁜 중에도 짬이 나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테크노마트같은 첨단 쇼핑몰을 찾기도 하지만, 삶의 희노애락과 애환이 깃든 재래시장을 찾아 사람 사는 체취를 느끼는 때가 많다. 봄이 무르익은 주말 오후, 농수산물시장 나들이에 나선 김학래씨 가족의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곳만은 아닙니다. 시장은 이웃과의 교류의 터전이며 서민들의 뜨거운 삶의 숨결이 넘치는 곳이지요.”

부업으로 미사리에서 ‘김학래, 임미숙의 루브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김학래씨는 카페에서 사용하는 음식을 위해 평소에 장을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이다. 미사리에서 가까운 구리시장을 애용하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시장이야말로 생생한 삶의 현장 교육이 가능한 곳’이라는 점이다. 정찰제나 전자저울로 더도 덜도 없이 정확하게 계산해 내주는 백화점이나 전문쇼핑몰이 갖지 못한 인간적인 체취가 그득 묻어나는 곳이라, 외동아들 동영(10, 초등학교 3학년)이의 EQ를 위해서도 가족이 함께 시장 나들이를 즐기는 편이다.

봄이 무르익은 주말 오후, 김학래씨 가족은 집(송파구 풍납동)에서 가까운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찾기로 했다. 알이 밴 꽃게가 미각을 유혹하는 계절이라, 저녁에 먹을 반찬거리로 싱싱한 꽃게도 사고 동영이에게 수산물시장도 구경시켜 줄 겸해서 코스를 이곳으로 잡았다. 시장 나들이가 결정되자 제일 신나는 건 역시 동영이였다. 동영이는 요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라 시장 나들이에 무척 들떠 있는 모습이다.

“공부보다는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1, 2학년 땐 동영이를 마음껏 놀게 했어요. 밝고 건강하고 마음 씀씀이가 올바르면 된다고 여겨 남들처럼 조기교육이다, 과외다 하는 것에 열중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3학년이 되니까 공부가 어려워져 동영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에요. 이게 아니다 싶어 요즘엔 보습학원에도 보내고 영어공부도 시키고 있는데.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힘든가 봐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공부를 안 시키면 너무 떨어져서 바보 취급받기 십상이겠더라고 임미숙씨는 안타까워하며 말한다.

◇활기찬 시장나들이는 열살 외아들의 인성교육에 좋은 것 같아요◇

주차빌딩에 차를 세우고 수산물시장 입구로 들어서니 새우, 멸치, 조개, 오징어 등 각종 해산물들이 펄떡거리는 모습이 마치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젓갈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젓갈은 언제 어느 때 밥상에 내놓아도 그야말로 짭짤한 밑반찬이 되는 걸 잘 아는 살림꾼 임미숙씨는 앞서 걸으며 동영이와 함께 수산물시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남편을 불러 세운다.

명란젓, 창란젓 등을 이쑤시개로 집어 맛을 보는 임미숙씨는 무엇보다 제주도산 꽃 멸치에 눈을 돌린다. 고춧가루를 넣어 무치거나 쪄내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라는 말에 5천원어치를 달라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가 멸치를 담는 사이 옆에 서있던 동영이가 꽃멸치를 들고 먹는 흉내를 내자 임미숙씨는 “아서” 하며 말린다. 워낙 장난기가 심한터라 그대로 두면 동영이가 짜디짠 젓갈을 마냥 집어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산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동영이는 낙지에 관심을 보였다. 누구 키가 더 큰가 내기라도 하려는 듯 길게 꿰인 낙지 코를 잡아들고 대보다가, 한입에 꿀꺽 넣으려는 표정을 짓는 동영이. 먹성이 좋은 동영이는 가리는 음식 없이 무엇이든 잘 먹어서인지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다.

“아니, 이게 누구여. 김학래씨 아녀 유.”

TV에서 본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자, 시장 상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는 체를 하며 “잘해드릴게 우리 집으로 오세요” 한다. 특히 김학래씨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야채 장사를 했던 친근함이 있어서인지, 시장 상인들은 “TV보다 훨씬 미남이네”라며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이웃인 듯 소탈하게 인사를 건넨다. 옆의 동영이를 보고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아들이 훤칠하네유”, “다복하시네유”하며 덕담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아빠, 저 넓적한 생선 이름이 뭐야?” 좌판 위에서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보며 동영이가 물었다. 그러자 김학래씨 대신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대뜸 “이건 민어야. 쪄먹거나 매운탕을 하면 살이 고소하고 달아. 아주 맛있어”라며 설명을 해준다. 그러면서 “담백하고 미네랄도 많으니 팍팍 쓰라”고 임미숙씨에게 권하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민어 매운탕에 입맛이 돌긴 하지만, 오늘의 주제인 꽃게를 사기 위해 김학래씨 가족은 발길을 돌렸다. 꽃게를 파는 가게는 시장 중간쯤에 위치해 있었다. 살아있는 꽃게가 수족관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수족관에서 김학래씨가 듬직한 암 꽃게 한마리를 집어들자 환영인사라도 하듯 꽃게는 다리를 부산하게 움직인다.

집게 다리에 물릴까 조심하면서 임학래씨는 배딱지를 보여주며 동영이에게 “암꽃게와 숫꽃게의 차이를 아니?” 하고 묻는다. 동영이가 잘 모른다고 하자, 김씨는 “암꽃게는 산란을 하기 위해 알을 품고 있어 더욱 맛이 있는데 배딱지가 넓은 것이 특징”이라며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이 무척 정겨워 보인다.

“게를 갑각류라고 그래. 게는 단미류(短尾類)에 속하는 절족(節足)동물인데 꼬리가 짧아. 그래서 재주 없는 사람을 가리켜 게 꼬리 같다고 하지. 또 게는 옆으로 기어다니기를 잘하고 거품을 내뱉는 단다. 그래서 사람이나 동물이 화가 나거나 몸이 괴로울 때 거품같은 침을 흘리면 게 거품을 문다고 표현하지.”

살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골라 집게다리에 찔리지 않도록 신문지로 잘 말아 주인이 봉지에 담아주자 김학래씨가 받아들며 게에 관련한 상식을 열심히 동영이에게 말해준다. 그런 아빠에게 동영이는 “우리 아빠 박사다” 하며 감탄을 하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게는 익으면 색깔이 빨개지는데 그 이유가 뭔 줄 아니? 그것은 아스타크산틴이라는 색소 때문이란다. 삶거나 굽게 되면 이 색소 단백질이 변성하기 때문이지.”

이에 질새라 이번엔 임미숙씨가 설명을 해주자 불현듯 동현이가 “아빠, 엄마 어젯밤에 백과사전 펴놓고 공부하셨죠?”라며 예리하게 묻는다. “공부는 뭘, 평소 상식이지” 하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슬쩍 넘어가면서 김학래씨는 아들의 머리를 콩 쥐어박는다.

전복 가게 앞을 지나면서 임미숙씨가 이내 발걸음을 멈춘다. 머뭇머뭇거리다 “아저씨, 양식 말고 자연산 있어요?” 하고 묻는다. “친정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데 전복죽을 좋아하셔요.”

“그럼 자연산으로 잘 골라 드릴게요.” 전복집 아저씨는 수족관에 어망을 넣으며 “껍질이 시퍼런 것은 양식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자연산이라며 임미숙씨에게 내보인다. 저울에 대여섯 개 올라가자 1kg이 되었다. 13만원이나 되는 거금이지만 장모님의 쾌유를 빌며 임학래씨가 돈을 지불했다.

수산시장의 마지막 부분엔 조개류만 파는 집들이 즐비해 있다. 꼬막, 고동, 골뱅이, 대합, 홍합, 맛살, 키조개… 십여 가지가 되는 조개들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 그중 동영이의 시선을 끈 것은 키조개였다.

“동영아, 키조개는 왜 키조갠지 알아? 이건 나락을 일 때 사용하는 키처럼 생겼다 해서 키조개라는 이름이 붙여진 거야.”

“아빠, 키가 뭐야?” 동영이의 질문에 부부는 얼굴을 마주본다. ‘키도 몰라?’ 하려다가 언젠가 농촌 프로그램을 맡았던 한 리포터가 ‘요즘 농촌에서도 키가 사라졌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동영이에게 키를 어떻게 설명해 줄까 잠시 고심을 하는 눈치다.

“그림책에 보면 오줌싸개 아이에게 옆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며 씌워 보냈던 것 기억나니?” 아빠의 말에 그제서야 동영이가 “아아, 그거요” 하며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동영이뿐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옛날 것을 잘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친 김학래, 임미숙씨 부부는 다음엔 동영이를 데리고 옛것들이 많이 있는 황학동 시장 나들이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산시장을 벗어나려는데 얼음 창고가 나타났다. 수산물이나 상자 안에 채우기 위한 얼음을 파는 곳으로 자잘한 얼음 덩어리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한번 해볼까’ 무언의 눈빛으로 동의한 부자는 ‘으싸, 으싸’ 삽질을 한

다.

“너 이렇게 약해?”

아빠의 한마디에 지지 않으려는 동영이는 얼굴이 벌개지도록 힘을 써서 얼음을 퍼올린다. 한창 삽질을 하던 이들은 도로를 건너니 청과물시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붕어빵이 보이자 출출한 김에 쉬어가자며 붕어빵과 오뎅을 사 먹었다. 역시 먹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또 없을 듯싶다.

◇씀바귀 나물도 사고 채소가 가득 담긴 손수레도 밀어보고…◇

달래, 냉이, 씀바귀 등의 나물을 파는 노점상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임미숙씨는 씀바귀 나물을 보자, “이거 김학래씨가 좋아하는 거예요” 하며 “세 근만 주세요”란다. 나물 파는 아줌마는 인심까지 듬뿍 얹어 후하게 저울을 달아 임미숙씨에게 건네주었다. “맛있게 먹을게요” 하며 돌아서는 김씨 가족들의 발걸음에서 기분 좋은 경쾌함이 묻어난다. 김학래씨의 팬이라며 사인을 부탁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친절하게 사인도 해주는 모습도 보기 좋다. 김씨 가족은 청과물상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딸기 같은 제철 과일은 물론 수박, 참외, 오렌지, 멜론 등이 수북이 진열된 것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풋풋하고 상큼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동영이는 외할머니 병 문안갈 때 들고 간다며 멜론을 한개 골랐다.

경매가 끝나고 난 뒤의 야채시장은 한산했다. 새벽엔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북적댔을 야채시장은 한산한 느낌마저 주었다. “온김에 김치거리도 사가지고 가는 게 어때?” 김학래씨가 아내에게 권유하자, 임미숙씨도 “그럴까요” 하며 좌판을 돌아본다. 김학래씨는 아내가 야채거리를 고르는 사이 동영이에게 어느 것이 갓이고 어느 것이 대파고 어느 것이 쪽파인지를 물어본다. 동영이는 아빠를 따라 야채를 하나씩 들어보며 이름을 배운다. 현장에 나와 직접 농산물을 접하는 것이기에 동영이는 더욱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듯 했다.

채소를 가득 담은 수레가 보이자 김씨는 “얼마나 무거운지 한번 끌어보라”고 동영이에게 말한다. 동영이 혼자 힘으로 어림도 없자, 가족이 힘을 합해 수레를 밀어본다. 그래도 겨우 움직일 듯 말 듯하다.

“아빠, 정말 무거워요. 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다니는 아저씨들은 얼마나 힘들까?. 이제부턴 김치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잘 먹어야 겠어요” 다큰 아이처럼 철든 소리를 하는 동영이의 말에 김씨 부부는 흐뭇함을 느꼈다.

김학래, 임미숙씨 부부는 결혼후 한동안 아이가 안 생겨 새벽기도까지 다니는 열성 끝에 동영이를 임신했고 동영이가 배 안에 있는 열달 동안에도 새벽기도를 부지런히 다녔다고 한다. 이들 부부가 동영이에게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신앙 안에서 그저 착하고 올바르게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것.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내 일인 듯 여기며 힘을 나누는, 그런 정 많은 사람으로 커주기를 바라는 김학래, 임미숙씨 부부는 앞으로도 시간이 나면 동영이에게 살아있는 현장학습을 많이 시킬 생각이다.

<글·최미선 기자> tiger@donga.com

<취재·장옥경 (자유기고가) 사진·정경택 기자,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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