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규민]기업하기 좋은 나라?

  • 입력 2001년 5월 18일 18시 27분


꼭 3년 전 이맘때, 새로 들어선 김대중 대통령 정부는 정부개혁을 위한 야심적이고 거창한 스케줄을 내놓았다. 당시 이른바 ‘국가경영혁신’이란 것을 주도했던 기획예산위원회 진념(陳稔) 위원장은 이 계획에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기준으로 5년 이내에 말레이시아와 같은 수준인 15위로 끌어올리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지난달 발표된 IMD의 연례 평가보고서에는 우리나라가 조사대상 49개국 중에서 지난해와 같은 28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이 되려면 아직 2년이 남긴 했다.

▼기업발목잡는 정부규제▼

그동안 퍼부은 국민의 돈이 얼마이고 사회는 또 얼마나 큰 고통을 치렀는데 3년 동안 매달렸던 구조조정의 결과가 고작 헝가리나 칠레보다도 못한 국가경쟁력이라니 허탈의 정도가 너무 크다. 까짓 해외 예측기관 하나가 어떻게 평가하든 그게 무슨 대수냐 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냥 넘어가기 불편한 대목은 그런 수준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있다. 바로 우리나라가 여전히 ‘극심한 정부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닌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이남기(李南基) 위원장의 재벌관을 보면 이 나라에서 기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경제단체들이 규제완화를 요구할 때 이 위원장은 그들의 행동을 “국가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체제적 위험을 수반하는 재벌체제” 안에서 “오너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단언했다.

그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사용하는 단어들이 우리처럼 기업과 아무 관계 없는 제3자가 곁에서 듣기에도 섬뜩할진대 막상 당사자인 재계인사들이 받아들이기에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 위원장 발언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연히 높아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이슈화됨으로써 여당은 주변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를 무수히 들었을 게 틀림없다.

이달말까지 정재계가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한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정위의 대기업에 대한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일의 근본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와중에 7대기업에 대한 조사는 왜 시작해서 쓸데없이 구설수에 오르는지 하나같이 세련되지 못한 공정위의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기업은 분명히 공정위가 멱살을 잡고 흔들 대상이 아니다. 외환위기가 일어나게 된 배경에 일정부분 재벌들의 책임이 있고 또 그들을 향한 여론의 비판도 어느 정도 기업이 자초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은 사회가 가꾸고 키워야 할 가축과 같은 존재다.

과거 개발경제 시대의 정부는 아이들을 굶기더라도 소 죽만큼은 꼬박꼬박 끓여 먹이는 가장과 같은 존재였다. 국민은 당장 먹을 게 없는데도 정부는 자금을 몽땅 동원해 산업에 퍼부으면서 경제를 일으켰고 그런 혜택을 받는 기업에 여론의 시선이 좋을 리 없었다.

정권에 유착하고 탈세나 일삼으면서 중소기업이 하던 일까지 탐욕스럽게 갈취하던 재벌들에 채찍을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을 그대로 두면 약탈적 자본주의만이 남을 것이라는 주장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국민이 소를 때리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공정위까지 합세한 매가 지나쳐 키우던 소가 병을 얻어 농사일을 못하게 된다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정치는 오늘 할 일을 안하고 지나가도 그만이지만 시시각각 경쟁을 하는 기업이 앓고 누웠다가 일어날 때는 이미 승부를 잃은 뒤일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공정위의 감정적인 대응은 결코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정위의 임무는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독려함으로써 기업들의 시장진입을 도와주는 것이다. 공정위를 경제검찰 운운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공정위의 구시대적 발상▼

미국의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는 뉴욕의 씨티은행이 미국법상의 규제를 피해 런던에서 투자업무를 다루면서 미국은 일자리와 세금만 잃었을 뿐이라고 정부규제의 허구를 비판했다. 벤츠와 BMW회사가 미국 내 사무실을 정부규제가 가장 적은 앨라배마와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옮긴 사실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규제라는 것은 이처럼 모순덩어리일 수 있는 것이다.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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