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천재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가로 국외로는 고흐, 한국에서는 이상(李箱)이 얼른 떠오른다. 천재란 그의 예술작품만이 위대해서는 안된다. 불행으로 점철된 극적 생애가 뒷받침되어, 그 일화가 끊임없이 인류에 회자되어야 한다.
고흐는 타고 난 천재가 아니라 신이 그의 삶을 통해 ‘천재의 표본’을 제시한 모범적 사례에 속한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 미치광이였다. 서른 일곱 해의 짧은 생애 동안 단 한편의 그림 밖에 팔리자 않았으므로 평생 가난에 쪼들려야 했다. 절망적인 발작을 겪으면서도 그의 예술혼은 불타올랐고, 끝내 권총자살로서 비극적 생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천재가 그렇듯 그는 사후에 찬연히 소생했다.
일본인 화가요 미술학자인 고바야시 히데키가 쓴 ‘고흐의 증명’은 정신질환 조울증 환자였던 고흐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다룬 다큐가 아니다. 고흐가 자살하기 한 해 전 생미레 정신병원에 유폐되었던 1889년 9월에 그린 세 편의 자화상 중 한 편이 위작이라는데 초점을 맞추어 이를 논증적으로 추적한 독특한 책이다.
‘불망을 그리며’ ‘왼손잡이 자화상’ ‘불굴의 자화상’ 세 편 중, 100여 년 동안 고흐의 작품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온 ‘왼손잡이 자화상’이 왜 위작이냐는 가설 아래 출발한 저자의 집요한 추적은 난해한 사건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가는 명 탐정가를 방불케 한다.
100여 년 동안 전문가들마저 진실이라고 증명한 사실을, 진실을 위장한 거짓이라고 뒤집는 작업이야말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터이다. 고흐의 예술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므로 진짜의 탈을 쓴 가짜를 가려내겠다는 저자의 집요한 열정이 어찌 보면 고흐의 광기 어린 열정과 일맥상통한다.
왼손으로 팔레트를 잡은 어색함에서 출발해 얼굴 형태의 골상학 해부를 거쳐 눈동자, 머리털, 수염이 고흐의 진품 자화상과 어떻게 다른가를 분석해 고흐가 입은 작업복, 팔레트의 하늘색 물감 사용 따위를 저자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면밀하게 증명해 나간다.
‘왼손잡이 자화상’이 동시대의 무명화가로 고흐 동생 데오의 친구였던 이사크손에 의해 1904년 처음으로 공개된 배경, 고흐 유산 상속자였던 데오의 처 요한나와의 위작 공모 과정의 추적이 한편의 박진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저자가 그 전 저서 ‘고흐의 유언’으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전력이 말해주듯, 400여 쪽의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이 숨막히는 긴장의 연속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 나는 문득 저자의 위작과정 증명을 뒤집는 또 한편의 추리소설을 내가 쓴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애써 증명한 진실이 과연 진실일까? 진실이게끔 믿게 설득한 한 편의 추리소설이 아닐까? 미스테리가 다시 미스테리를 낳는다. 이래저래 천재의 삶은 미로를 통한 미궁 뒤지기이고, 그래서 다시 세인의 입에 회자된다.
고바야시 히데키 지음 김영주 옮김 410쪽 9800원 바다출판사
김 원 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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