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 책]최인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 입력 2001년 5월 18일 19시 21분


◇철학의 불꽃을 보았는가

요즈음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레이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문화과학사· 2000)이다. ‘천재의 의무’란 부제를 가진 이 책이 내 책상에 올려지기까지는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지난 겨울 나는 대학시절 철학을 전공한 아들 녀석의 방에서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가’라는 부제를 지닌 ‘비트겐슈타인’(이두글방)’이란 책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다.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난해한 철학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일종의 만화형식으로 설명한 책이었는데 그것을 단숨에 읽은 후 나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카네기라고 불리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직업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에 들어가 히틀러와 같이 배웠으며, 러셀에게 천재성을 인정받은 후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죽음에 대해 더 많은 관찰을 하기 위해 일부러 최전방의 관측소로 지원하였으며, 막대한 유산상속을 거부하고 자신은 조그마한 초등학교에서 존경받지 않는 선생의 길을 택했던 수수께끼의 인물.

그가 다시 철학을 연구하기 위해 캠브리지로 돌아왔을 때 케인즈는 ‘방금 신이 도착했다’란 말로 소식을 전했던 사람. 마거리트란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으나 결국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회의로 헤어진 후 한때는 동성연애자로 오해까지 받았던 철학자. 이 철학자에 대한 우연한 발견은 나에게 계속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나는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심사위원이었던 러셀에게 제출한 비트겐슈타인의 최초의 논문 ‘철학논고’(천지)와 그의 저서 중 그가 세상을 뜬 후 발간되어 가장 널리 알려진 ‘철학적 탐구’(서광사)’의 두 책을 따로 구입해 읽기 시작하였다.

개인적으로 철학이란 학문을 좋아하고 있는 나로서, 난해하다는 그의 두 책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그의 철학은 객관적으로 분석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날카로운 직관력을 가진 한 천재가 ‘생각’과 ‘언어’와 같은 존재적 사유와 부딪쳐 일으키는 스파크이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이해하기보다는 그가 일으키는 불꽃에 함께 동참하는 편이 훨씬 현명한 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옥스퍼드대에서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레이몽크(Raymonk)가 두 권의 책으로 펴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란 전기는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의 인물을 새롭게 만나는 신선한 기쁨을 내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최 인 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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