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찬란한 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황금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집착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이 책은 금에 대한 인간의 역사를 광범위한 역사적 사실과 에피소드들을 바탕으로 펼친 한 편의 광대한 장편 서사시이자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피터 L 번스타인은 이미 ‘신을 거역한 사람들’이란 저서로 경제 및 금융분야에서 확고한 학문적 성과와 작가적 재질을 검증 받은 인물이다. 특히 노년에 내놓은 저서라 내용과 구성, 그리고 참고자료들이 알차게 짜여져 있다.
하지만 무려 611쪽이나 되는 분량 때문에 독자들은 그 부피에 우선 압도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감만 벗어나서 필요한 부분부터 읽기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황금 이야기에 푹 빠질 정도의 멋진 서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방대한 저서에 대한 번역 역시 보기 드물게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다.
이 책의 제목인 ‘황금의 지배’(The Power of Gold) 밑에는 ‘망상의 역사’(The History of an Obsession)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붙어 있다. 학술서처럼 외관이 꾸며져 있지만 오히려 황금과 인간 이야기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시간 순서로 꾸며져 있다. 권력과 부의 상징, 승리로 이어진 길, 그리고 영광에서 몰락으로라는 세 개의 굵직한 주제 하에 금의 마술적이고 종교적인 속성에서부터 시작해서 금이 화폐로 변신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변신이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찬찬히 설명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금은 두 가지의 역할, 즉 장식품의 역할과 화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왔다. 초기에 금은 드러나는 광채 때문에 권력과 권위를 나타내는 도구로 활용되었지만, 후일에는 화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더욱 큰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황금빛 문장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활용했던 사람들은 역시 고대 이집트인들일 것이다. 그들은 황금의 찬란한 광채 그 자체가 인간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일찍부터 알아차렸다.
이집트에서 황금을 사용하는 것은 파라오들만의 특권이었다. 파라오 외는 어느 누구도 황금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런 제한 덕분에 파라오들은 신의 장식물인 바로 그 물질로 스스로를 장식함으로써 신과 같은 역할을 자임하며 자신들이야말로 신성함 그 자체임을 증명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절대권력의 상징으로 황금을 활용해 온 것도 고대 이집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권력자들은 황금이 가진 강력한 힘을 잘 이해했기에 ‘게걸스럽다’고 표현될 정도로 황금을 얻는데 집착했다. 1511년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은 “금을 가져와라. 가능하면 인도적으로, 그러나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금을 가져와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후 피사로의 잉카 정복은 학살과 약탈의 광기로 얼룩지게 된다.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금으로 된 모든 것들을 약탈해서 제국으로 보냈다. 역설적인 사실은 신세계에서 홍수처럼 흘러 들어온 금은 정복자들이 원래 약속했던 것처럼, 그리고 왕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스페인에 부와 권력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징벌처럼 스페인제국의 몰락을 촉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본격적인 화폐로서 황금이 사용된 것은 로마제국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금화는 선전과 홍보, 그리고 권위의 상징으로 활용되었다. 로마의 평화가 깨어질 무렵부터 시작해 불안과 공포의 시대가 닥칠 때면 인간들은 어김없이 금을 모으는 행위에 집착하게 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이런 습성에는 큰 차이가 없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금화의 통용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고 금괴는 결제수단이나 유럽과 극동의 무역불균형을 메우는 데만 사용됐다. 하지만 황금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집착은 결코 그칠 줄 몰랐다. 19세기 골드러시가 빚어낸 드라마를 생각해 보면 뿌리깊은 인간의 집착과 욕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황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여전하지만 금의 역할, 본질 그 자체는 변화되고 있다. 장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황금 이야기는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된 인간사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김승욱 옮김 611쪽 1만8000원 경영정신
공병호(코아정보시스템 CEO.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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