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국악기인 가야금과 떼어놓을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명인. 창작 가야금 음악의 창시자이자 독보적 존재. 그러나 황병기교수(이화여대 음대)의 이름은 단지 ‘가야금’에만 못 박혀 있는 것이 아니다.
백남준, 존 케이지, 홍신자 등과의 폭넓은 교우는 그의 인간적 ‘넓이’를 증명한다. 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황병기 창작 40주년 기념 콘서트’에 국내외의 국악인과 클래식 아티스트, 대중음악가, 전위예술가 30여명이 함께 출연하겠다고 앞을 다투는 것도 황병기라는 ‘인간’이 가진 매력 때문이 아닐까….
재미 작곡가 나효신은 지난해 가을 이틀 동안에 걸쳐 황병기를 인터뷰한 기록을 정리, 이 책을 내놓았다. 인터뷰를 방해하는 전화 벨 소리, 녹음 사이사이에 들리는 옆집 못 박는 소리까지 정밀하게 담아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영상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영한대역(英韓對譯)의 형태를 띠어 외국인을 위한 한국음악 안내서로서의 기능도 충분하다.
책 서두에서 명인은 음악과 함께 한 자신의 삶, 교우관계 등을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풍성한 화술로 풀어놓는다. 손(孫)이 귀하기로 이름난 집의 3대 독자로 출생.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가야금 수업, ‘한 집안에 살며 방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 이라는, 또 다른 예술가(소설가 한말숙)와의 결혼생활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명인의 혜안이 느껴지는 부분은 책 곳곳에 박혀있는, 국악에 대한 그의 분석적 안목이다. 우리 전통음악의 독특한 박자, 음계, 철학을 아우르는 그의 설명이 서양음악과 인도의 라가 음악을 오가며 때론 무릎을 치게 만든다.
“서양음악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음악이 한국음악인지도 몰라요. 한 음을 뜯고 나서는 다음 음을 뜯기 전에 우선 그 소리를 끊어 버리잖아요. 화음을 아예 기피한다고 해야겠지요.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음악이 어떤 의미에선 동양음악의 정수가 아닌가….”
계면조(界面調)에 대한 설명은 또 얼마나 해학적이면서 정곡을 찌르는가. “서양 음계로 따지면 미, 라, 시, 도가 계면조의 핵심 구조예요. 미는 지애비, 라는 지에미, 시는 지새끼, 도는 지새끼의 어린 동생이죠. 라 시 도는 다닥다닥 붙은 진한 핏줄의 관계이고, 모든 음은 ‘라’로 가려는 강한 인력을 받고 있어요. 애비(미)는 따로 놀죠. 그런데 문패는 어엿하게 애비 이름으로 되어 있고….”
나효신 지음 247쪽 2만원 풀빛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