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덕산면 용몽리 덕산중학교와 그 주변. 술래는 ‘접시꽃 당신’의 이 학교 도종환(都鍾煥·46) 교사이고 몸을 숨기는 이는 도교사가 담임을 맡고있는 이 학교 3학년 K군(15)이다.
도교사가 K군을 처음 본 것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 10년 만에 교단에 선지 얼마 안된 99년 3월 입학식 날. K군은 이날 교복 대신 남루한 파카차림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K군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뒤틀어지기 시작한 말썽꾼. 성적도 부진해 오후에는 진보반이라고 불리는 특수 학급에서 별도로 공부를 했다.
도교사는 그해 5월 K군 담임이 휴직하자 그 반을 맡겠다고 자청했다. 이 때부터 숨바꼭질은 시작됐다.
도교사는 한시간을 걸어 등교하는 K군이 안타까워 차비를 주었더니 군것질로 써버렸다. ‘그래 남들처럼 빵도 사먹고 싶었겠지’라고 되뇌이며 아예 자전거를 사서 주었더니 이번에는 며칠만에 PC방에 잡혀 버리고 터벅터벅 걸어 등교를 했다.
도벽도 도를 넘었다. 체육시간에 여학생들이 벗어놓은 옷을 뒤져 돈을 가져가거나 수퍼 등에서 물건을 훔쳤다. 도교사는 양말과 런닝, 팬티, 실내화 등 필요한 물건들 사주었지만 파출소를 찾아 담임 소견문을 써주고 데려와야 하는 일은 잦아들지 않았다.
2학년 들어서서는 폭력성까지 새로 나타나 다시 담임을 자청해 따라간 도교사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하지만 도교사는 K군의 도벽이 중요한 사람(어머니)을 잃은 충격으로 발생하는 병리적인 현상이라는 청소년상담실의 조언을 얻고 다시 사랑과 관심을 쏟았다.
매일 아침 K군 집에 먼저 들러 차에 태워 등교하면서 대화하기 시작한지 수개월만인 올 겨울부터 변화가 찾아왔다. K군은 가출해 아파트 지하 보일러실에 숨은 자신을 3일간이나 전단을 돌리며 수소문해 찾아온 도교사에게 “기다렸어요”라고 말했다.
스승의 날인 15일에는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의 카드 메일을 보내왔다.
도교사는 “그가 감사의 마음을 표현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가슴이 뭉클했다”며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표현한 데서 희망을 엿본다”고 말했다.
도교사는 이로써 바위를 정상으로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역할도, 끝모를 숨바꼭질도 끝났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K군은 이미 술래가 자신을 찾기를 바라며 몸을 숨기고 있다.
<진천〓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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