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대 교수 436명중 352명이 서명한 이 성명은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대학운영방침에 따라 대학의 이념과 본질이 크게 손상돼 보호 육성이 필요한 학문분야의 위기감이 증폭했다”며 기초학문에 대한 교육당국과 학교측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은 총장이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거취문제까지 제기하겠다고 밝혀 향후 학교측의 대응에 따라 파문이 커질 수도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이 대학사회에서는 다소 의외인 집단성명 방식까지 선택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문학 사학 철학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기초학문 분야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에 대한 편견 없는 연구작업이 대학의 존재와 가치를 규정하는 변함 없는 근거인데도 요 몇년 새 세속적 인기와 단기적 성과에 의해 학문을 평가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비단 서울대뿐만이 아니다. 지금 많은 대학에서 기초학문이 무너지고 있다. 학생들은 이들 학과를 아예 기피하거나 입학하고서도 전과(轉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폐강되는 과목도 속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초학문 연구자들은 학문적 자존심과 연구의욕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다.
대신 학생들은 자격증이 주어지고 취직에 도움이 되는, 이른바 ‘돈 되는’ 학문에만 몰리고 있다. 이는 학문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을 단순한 ‘취업학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현상이다.
이 같은 학문간 불균형은 현재의 교육정책이 지나치게 실용학문만을 우대하고 있는 데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국가경쟁력을 이유로 지나치게 지식정보화산업과 ‘신지식인’ 육성만이 강조돼 온 것이다. 정부가 두뇌한국(BK)21사업에 따른 재정지원을 하며 학부제를 전제조건으로 한 것도 이를 부추겼다. 학과별이 아닌 학부별 모집은 학생들에게 비인기학과인 기초학문을 외면하게 했다.
정부와 대학은 연구비배분 학생배치 교수확보 등 여러 면에서 기초학문 육성을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기초학문의 견실한 터전 위에 응용학문도 더욱 탄탄하게 발전할 수 있고, 이들간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대학의 연구와 교육활동도 더 큰 활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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