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이슬람과의 대화/스페인]문명-문화-종교간 화해 실천

  • 입력 2001년 5월 20일 18시 49분


플라멩코와 투우의 나라 스페인. ‘몸’은 유럽대륙에 속해 있지만 ‘마음’은 늘 지중해와 대서양 넘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 향하곤 했다. 19세기 초 이 곳을 침략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아프리카다”고 말했다. 중세 때 무어인(이슬람교를 믿던 북아프리카인)에게 수백년간 지배를 받았고 이슬람 문화에다 아랍인의 피까지 섞인 스페인을 나폴레옹은 끝내 유럽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7세기 초 용병으로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해 711년 코르도바에 왕국을 세운 이슬람 세력은 13세기 초 불붙기 시작한 기독교도의 국토탈환운동(레콘키스타)으로 마지막 거점이던 그라나다가 1492년 함락되면서 스페인 땅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도 스페인을 지배했던 화려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은 그라나다와 세비야를 중심으로 한 안달루시아(‘태양이 빛나는 땅’이란 뜻) 지방에 그대로 남아 있다.

스페인 내 이슬람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세비야 대성당의 첨탑인 하랄다와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 12세기 모로코의 모하드 왕조가 성인(聖人) 모하메드를 추모하기 위해 로마신전 터에 대리석과 벽돌을 사용해 97.5m의 하랄다를 축조했으나 1234년 기독교도가 세비야를 함락한 뒤 이 탑 위에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고딕식의 지붕을 만들었다.

이슬람 최대의 문화재로 꼽히는 알함브라 궁전은 높이 3470m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그라나다의 깎아지른 벼랑 위에 세워져 있다. 당시 이슬람 왕이었던 모하메드 13세는 이 왕궁을 완공하면서 “사랑하는 백성들이여! 너희가 살아서 지상의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불과 10년 뒤인 1492년 기독교도에 쫓겨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으면서 “스페인을 잃은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함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원통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곳은 훗날 ‘통한의 언덕’으로 이름지어졌다.

4월22일 오전 9시 알함브라 궁전 앞 매표소.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매표소 앞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1984년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한 이후 안달루시아 주정부는 시설보호 차원에서 입장객 수를 하루 98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입장료는 1100페세타(약 9000원). 안내원 가르시아 페트로(35)는 “입장료가 다소 비싸긴 하지만 비싼 만큼의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알함브라에는 서양뿐만 아니라 알제리와 모로코 등 이슬람권에서 온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이국 땅에 꽃핀 선조의 문화를 감상하면서 감회에 젖는 모습이었다. 터키에서 역사학을 공부한다는 압둘라 하메드(23)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전쟁과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문화재가 크게 훼손된 반면 오히려 기독교 국가인 스페인이 이슬람 문화를 이렇게 잘 보존하고 있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스페인에서는 이슬람 열풍이 되살아나고 있다. 수도 마드리드에는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슬람 문화센터가 건설됐고 스페인 전역에는 300개 이상의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들어섰다. 그라나다에서는 이슬람교도들이 학교와 신문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슬람 열풍이 불면서 가톨릭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만 최근 2만5000명이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추세에 대해 알함브라 궁전에서 만난 영국 글래스고대학 광학연구소의 돈 화이트 연구원(36)은 “그동안 서구사회가 이슬람의 과학성과 예술성을 무시한 채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해 온 데 대한 반성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중세 이슬람교도의 후손이라는 하비에르 카펠(29)은 “진정한 문명간 화해는 문화와 인종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데서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페인에 남아 있는 이슬람 문화는 21세기 유럽과 아프리카, 지중해와 대서양,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루이스 알베르토 데 쿠엔카와 문화장관▼

“스페인 문화는 고대의 그리스 로마문화에서부터 게르만과 이슬람, 심지어 아메리카의 인디언 문화까지 수용해 조화롭게 발전시켰다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루이스 알베르토 데 쿠엔카와 스페인 문화담당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마드리드대에서 고대시를 강의하다 지난해 스페인 문화정책의 최고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초상화들’(1971)과 ‘은상자’(1985) 등 10여권의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스페인 내의 이슬람 문화를 어떻게 평가하나.

“비잔틴 문화와 중세 아랍예술을 스페인이라는 기독교적 풍토에서 가장 아름답게 형상화시켰다. 알함브라궁전은 스페인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 표현이자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이슬람 문화가 비록 아랍권에서 전해지긴 했지만 현재 스페인 문화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지방정부와 시민에게 일임하고 있다. 중앙에서는 알함브라궁전 등 이슬람 문화재에 대한 복구 및 수리를 지원한다. 특히 중앙정부는 시민들이 문화재를 즐길 수 있도록 고속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 자본을 건설하는 데 주력한다. 스페인 전체 예산 중 1%가 문화유지비로 쓰인다.”

-스페인 문화정책의 특징은 뭔가.

“시민이 모든 문화의 주인으로 일상에서 문화재의 의미와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페인 문화와 역사 속에 녹아 있는 예술정신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했다.”

▼약사▼

BC 3세기 카르타고 지배

BC 2세기 로마 지배

5세기 서고트 왕국

711년 무어족, 이베리아반도 점령

13세기 기독교도,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제외한 영토 회복

1492년 이슬람 거점인 그라나다 함락,

이슬람 모로코로 후퇴

콜럼버스, 아메리카 발견

16세기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정복,

지중해 제패

1804∼1814년 나폴레옹의 지배받음

1931년 공화국 선포

1939년 프랑코 독재 시작

1975년 프랑코 사망, 후안 카를로스1세 즉위

1878년 서구식 민주주의 헌법 채택

▼개요▼

인구 3900만명

위치 프랑스 남부 및 지중해 남서단의

이베리아 반도

면적 50만㎢(한반도의 2.3배)

수도 마드리드(470만명)

국가형태 입헌군주제(후안 카를로스1세

국왕)

인종 라틴족

언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바스크어

종교 가톨릭(90%)

GDP 5962억 달러

1인당 GDP 1만5287달러

(2000년 기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