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科擧衣(과거의)

  • 입력 2001년 5월 20일 19시 06분


지금은 職種(직종)도 많고 또 職業의 貴賤(귀천)도 없어 어느 분야든 최선을 다해 뛰어나면 ‘出世’가 보장되는 좋은 세상이다. 그러나 옛날이야 어디 그랬는가. 科擧만이 出世의 유일한 捷徑(첩경)이었으니 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특히 中國의 경우, 인구는 많고 자리는 적어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체로 鄕試(향시)를 거쳐 天子를 모시고 행하는 殿試(전시·일명 謁聖試)에 이르게 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만 대 1의 경쟁률은 보통이었다. 그러니 재수생이 왜 없었겠는가. 지금이야 3修 정도면 많은 축에 들지만 당시 그 정도로는 ‘속된 표현’으로 명함도 못 내민다. 30修는 보통이고 심하면 50修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唐나라 때는 이런 말이 유행했다.

五十少進士(오십소진사)-나이 오십에 진사급제하면 젊은 축에 든다.

우리의 新羅 眞聖女王 때에 해당되는 唐나라 昭宗(889∼903) 때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殿試에 웬 호호백발 노인이 응시하고 있었다. 하도 안쓰러워 昭宗이 물었다.

‘結婚은 했는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科擧 때문에 아직…’

‘나이는?’

대답이 무척 詩的이다.

‘五十年前二十五(오십 년 전에 스물 다섯이었습니다)’.

하도 불쌍해서 비단과 後宮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다. 자연히 커닝도 판을 쳤다. 중국사람들은 커닝을 ‘作弊(작폐)’라고 한다. 물론 기상천외한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박물관에서는 특이한 유물을 발견할 수 있다. 무언가 깨알같이 빽빽하게 적혀 있는 허름한 옷 한 장이다. 얼핏 보아 별 것 아니라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내력이 만만치 않다. 유물로서의 값을 하고도 남을 몇 백년 된 헌 옷이기 때문이다.

일명 ‘科擧衣’. 그러니까 과거시험을 치를 때 입었다는 옷인데 깨알같이 적혀 있는 수 만 자는 다름이 아니라 시험에 대비해 몰래 기록한 경전의 내용이다. 즉 우리도 잘 아는 논어니 대학, 맹자 등 사서삼경의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하여 입고 가서 들키지만 않는다면 장원급제는 ‘떼 논 堂上’이다.

그 ‘作弊’는 지금도 대학가에서 성행하고 있다. 다만 ‘科擧衣’ 대신 ‘族譜(족보)’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전에 서울대 일부 학생들이 중간고사 도중 집단 커닝을 했다 하여 재시험을 치렀다는 소식이다. 현금, 너나없이 만연하고 있는 대학의 풍속도다. 참으로 아쉽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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