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살해현장을 목격했다는 김영길씨(47·서울 거주)는 20일 “공수부대원이 사살 후 암매장한 사람은 당시 고향으로 함께 내려가다 변을 당한 친구 박병현(당시 25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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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간인 사살 암매장" 당시 공수부대원 첫 고백 |
김씨는 “80년 5월23일 광주에 사는 고향선배 집에서 병현이와 함께 식사한 뒤 모내기를 위해 고향인 보성군 노동면으로 내려가다 광주 북구 송하동 인성고 뒤편 저수지 부근에서 공수부대원들을 만났다”며 “군인들을 보자마자 나는 저수지 배수로를 따라 도망갔는데 친구가 달아난 방향에서 곧 총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해 6월초 병현이 아버지 및 경찰과 함께 현장으로 갔더니 친구 시신은 마을 주민들이 이장해 놓았고 시계 등 소지품은 모두 없어진 상태였다”며 “당시 주민들은 병현이가 저수지에서 100여m 떨어진 고추밭에 엎드려 있었는데 군인들이 ‘손들고 나와라. 셋을 세겠다’고 해 친구가 일어나자 총을 쏘았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이 생생하다”며 “양심고백을 한 군인을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진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당시 상황을 진술하겠다”고 말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양심고백한 40대 남자의 증언내용은 김씨는 물론 당시 송하동 노대마을 근처에서 밭을 매다 살해현장을 봤다는 윤금순씨(63·여)의 증언과 일치한다.
윤씨는 “80년 5월22일 아니면 23일 오후에 저수지 부근에서 20대 청년이 어깨와 목에 총을 맞고 숨지자 군인들이 시신을 뒤져 시계 등 소지품을 수습한 뒤 인근 앞산으로 끌고 가 시부모님이 묻혀 있는 묘지 바로 옆에 암매장했다”고 말했다.
한편 박씨는 5·18 관련자로 인정받아 유족이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광주 5·18묘지에 안장돼 있다.
<광주〓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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