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정치인과 카메라

  • 입력 2001년 5월 21일 18시 33분


정치인들이 카메라나 기자를 의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권자로부터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는 언론에 가능한 한 얼굴을 많이 타고 좋은 얘기가 실리도록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정치인들 중에는 ‘사진찍히는데’ 정말 ‘도사급’인 인사들이 많다. 뉴스의 중심인물이 아니어서 의도적으로 배제했거나, 셔터를 누를 때는 없던 인사가 필름을 현상해 보면 유령처럼 버젓이 한가운데 서 있더라는 사진기자들의 농담도 있다.

▷당의 총재나 대표가 무슨 중대한 발표를 할 때면 그 옆이나 뒷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의원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가관이다. 낄 자리도 아닌데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의원들 때문에 행사를 진행하는 당직자들이 곤욕을 치를 때도 많다. “이번에는 직접 관계가 있는 어느 어느 의원만 나오십시오”라고 아무리 당부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총재나 대표가 중대 발표를 할 때는 그 주변에 새끼줄이라도 쳐 놓자는 얘기마저 나온다.

▷국회가 열릴 때도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원회에서 가끔 진풍경이 벌어진다. 80년대 야당의 모 중진의원은 ‘총알국회의원’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가 정부나 여당을 향해 목성을 높일 때는 취재 카메라 초점이 주로 머물고 있는 의장 단상 쪽으로 뛰어나오기 때문이다. 화기애애하던 상임위가 기자들이 들어오면 갑자기 살벌해지는 경우도 많다. 기자나 카메라가 들어온 것을 목격하는 순간 통계자료나 증거 사진 등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고 정부측 관계자를 향해 대성일갈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19일부터 이틀동안 여야와 정부 3자간 유례없는 경제정책 포럼이 열렸다. 합의문까지 만드는 등 성과도 괜찮았다는 평가다. 이번 포럼은 카메라 풀기자만 잠시 취재했을 뿐 토의는 완전히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소신 발언이 많았던 모양이다. 의원들이 인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때문에 과잉행동이나 돌출발언을 하는 것은 보기에 민망한 때가 많다. 기자들이 있건 없건 정정당당하게 소신발언을 하고 품위 있는 행동을 해야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도 줄어들 것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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