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핵연료 악용 불가능▼
첫째, 미국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인사들은 경수로 1기에서 매년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이 300㎏에 달하므로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플루토늄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핵무기에 사용하려면 순도가 93% 이상이어야 하지만 경수로에서 3년간 연소되고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의 순도는 50∼80% 수준에 불과해 핵무기에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경수로를 이용해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려면, 정상적인 운전을 포기하고 경수로 가동 후 90여일 만에 핵연료를 꺼내 이를 재처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경우 생성된 플루토늄은 ‘질’은 높지만 ‘양’이 적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확보하려면 같은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 사용 후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6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기술적 어려움 외에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이라는 국제적 장치 때문에 경수로를 군사적 목적에 이용하기는 더욱 어렵다. 북한은 공급받은 경수로에 대해 IAEA 사찰을 수용해야 하므로 사용 후 핵연료의 인출, 이송, 재처리 등을 외부에 발각되지 않고 수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둘째, 북한은 경수로에 대한 안전규제 능력이 부족하여 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원전을 처음 도입하는 국가는 도입과 함께 교육 훈련을 받아 안전규제 능력까지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도 원전 도입 당시 안전규제 능력이 없었으나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점차 능력을 확보해 나갔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북한의 안전규제 체제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안전규제 부처인 국가핵안전규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원자력 전문인력을 다수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훈련만 시키면 안전규제 능력 확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셋째, 화력발전소가 건설비도 적게 들고 건설 기간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50만㎾급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기간은 42∼44개월로 100만㎾급 원자력발전소 건설기간(62개월)보다 짧고 ㎾당 건설단가도 30% 이상 저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수로 공사가 이미 시작되었고 화력발전소로 대체하려면 추가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공기 및 건설비 절감 효과는 미미하다. 현 시점에서 화력발전소로 대체하기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부지 선정, 기반시설 구축 등에 추가 비용 및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이미 체결된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과 재합의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비용-기간 절감효과 미미▼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연료비이다. 원전의 kWh당 연료비는 3.5원인데 비해 유연탄발전소는 이의 4배, 중유발전소는 6배 이상으로 화력발전소 건설 후 연료비를 누가 대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북한은 당연히 화력발전소 연료비용까지 지원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면 비용 절감 효과는 더욱 제한적일 것이다.
대북 경수로 사업은 한국형 표준원전이 턴키방식으로 외국에 공급되는 최초의 사업이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경수로 주요 부품이 건설현장에 인도되기 전까지 북한의 과거 핵의혹 검증은 해소될 것이다. 만일 이전에 경수로 공급계약이 취소 또는 조정될 경우 북한 핵문제 해결은 어렵게 되고, 남북간 화해분위기가 와해될 뿐만 아니라 국내의 주계약자 및 하청계약자에게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기술적, 경제적 실익이 없는데도 북한 경수로를 화력발전소로 대체하자는 주장은 남북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자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인순(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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