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수취인불명>김기덕 감독 "내 자전적 이야기"

  • 입력 2001년 5월 23일 16시 32분


<수취인불명> 포스터
`엽기 영화'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김기덕 감독이「수취인불명」으로 다시 관객을 찾아왔다.

26일 극장에 간판을 내걸 「수취인불명」은 미군기지 주변에서 벌어지는 왜곡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그의 두번째 작품인 「야생동물 보호구역」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이 영화는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함께 자란 혼혈인 친구 창국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덩치는 컸지만 눈이 선해보이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삶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20대 중반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지요. 다른 등장인물들도 모두 제 주변에 있었던 실제 인물입니다.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주인 잃은 수취인불명의 편지들을 많이 뜯어봤다고 고백한다.

각기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지만 대문에 꽂혀 있다가 바람에 날려 버려지기 일쑤인 편지들이 바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김감독은 미군의 주둔으로 생겨나는 우울한 삽화들을 칙칙한 빛깔로 채색하고 있으나 미군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거나 미국을 향해 분노를 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흰 개가 누런 개와 흘레붙는 장면이나 "겁도 없이 미군을 건드렸다"며 피의자를 때리는 경찰관의 모습이 답답한 현실을 은유할 뿐이다.

"영화의 배경은 70년대지만 지금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지요.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영화촬영 무대로 삼은 횡성의 미군기지나 서울 이태원의 미군기지가 일제시대 일본군이 쓰던 것임을 떠올리면 그 뿌리는 훨씬 깊지요. 세계화 시대에도 외국군의 주둔으로 상처입는 사람들은 여전히 생겨나고 있고 주둔군 역시 개인으로 보면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취인불명」을 반미와 친미의 경계선에 놓았습니다."

`김기덕표' 영화의 특징으로 꼽히는 것이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엽기적인 장면. 「섬」에서 낚싯바늘을 삼키는 대목이나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고등어로 사람을 찔러죽이는 설정처럼 이 영화에서도 사람이 논바닥에 거꾸로 처박히고 철사를 삼켰다가 똥을 누며 꺼내 목을 조르는가 하면 제 눈을 칼로 찌르기도 한다. 바로 이점이 김기덕 감독으로 하여금 갈채와 비난의 극단을 오가게 만든다.

"자극적인 장면을 직접 노출하는 것은 자제하느라 애썼습니다. 나무에 개를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대목도 외국 사람들의 정서를 고려해 카메라의 앵글을 사람 쪽으로 돌려놓았지요. 이걸 넣은 의도는 저열함에 대한 일종의 고백입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모습들을 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무학에 가까운 학력을 지니고도 그림공부를 하러 프랑스로 날아갔던 간단치 않은 이력처럼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이색적이고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수취인불명」은 이제야 김감독이 대중들과 `말 걸기'에 나섰다는 느낌을 줄만큼 전작들에 견주어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고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쉴새없이 등장해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다. 김기덕 감독의 새로운 실험을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진다.

김기덕 감독은 개봉을 앞둔 영화의 홍보보다는 차기작 「나쁜 남자」의 준비에 더 몰두하고 있다. 단짝인 배우 조재현과 신인 여배우를 내세워 불량배와 부유한 대학생의 어긋난 사랑을 그릴 생각이다. 이달 말에 크랭크인하겠다는 계획을 보면 김감독은 「수취인불명」의 흥행 여부와 새 작품의 방향이 아무 상관없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연합뉴스=이희용 기자]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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