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하산하는 DJ가 할 일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27분


요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표정은 밝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이총재가 상승세를 타 잠재적 라이벌인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있다. 정당지지도에서도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앞지르고 있으니 한나라당 분위기도 쾌청할 수밖에 없다. 항상 차갑게만 느껴지던 이총재의 인상도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다고 당직자들은 자랑한다. 당 안팎의 사정이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어 이른바 ‘이회창대세론’은 더욱 단단해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집권후의 비전 제시를 위해 국가혁신위까지 출범시켰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정권재창출에 대한 초조감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대통령의 자업자득▼

이런 판국에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은 법무장관을 바꾸면서 또 악수를 두었다. 그러잖아도 경제나 남북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4·26 재보선 참패 등이 겹쳐 DJ와 민주당의 지지도가 내리막길에 있는 판에 이런 악재가 덮친 것이다. DJ로서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날 것이다.

하필이면 이렇게 모자라는 사람을 추천했느냐고 아랫사람에게 역정을 낼 만도 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DJ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국민이 뭐라고 욕을 하건 검찰총장과 같은 요직은 충성심 강한 우리 사람으로 앉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그러면서도 욕은 덜 먹어야겠다는 얄팍한 계산을 하다보니 멀쩡한 법무장관을 내쫓는 해괴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검찰총장은 믿을 만한 사람 앉혔으니까 법무장관이야 호남출신만 아니라면… 어차피 중요한 역할은 총장이 다 할텐데… 이런 생각이었다면 이번 인사는 기본원칙부터 뒤틀린 것이다.

3일천하로 끝난 서울경찰청장 인사파동도 정권재창출을 위해 누가 쓸모가 있을까, 오직 이 기준으로 원칙에 없는 인사를 했다가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불과 5개월여 전 일이다.

김대통령의 임기는 19개월 남았다. 누구 말대로 이제 산을 내려가는 기간이다. 올라 올 때는 바로 발 앞만 보고왔다. 시야가 좁으니 내 편, 내 사람만 보게 되고 결국 인재 풀이 작을 수밖에 없다. 우리 편 숫자에만 집착해 의원꿔주기같은 이상한 방법까지 동원하고 갖가지 무리수와 편법으로 정치판을 얼룩지게 해놓고 말았다.

▼주변 요직 재정리하라▼

정말 개혁을 하려면 널리 개혁세력을 규합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반개혁세력을 모아 자리 나눠먹기를 하는 사이 정말 개혁을 지원하고 담당할 세력들은 멀어져 갔다. 하산할 때는 고개를 들어 멀리 보고 넓게 봐야 한다. 인재도 널리 구해야 하지만 DJ의 스타일은 별로 변하는 것 같지 않다.

한때 자리를 떠났던 동교동계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청와대건 당이건 주요 길목을 지키고 있다. 그 사람들이 보는 시각,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 그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내에서 소장파의원 등이 당정쇄신을 외쳐보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세’들의 핀잔뿐인 모양이다.

DJ로서는 임기말이 가까워질수록 레임덕을 막고 정권재창출을 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믿을 건 ‘내새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동교동계 중심의 구도로는 이도 저도 어려울 것이다.

DJ는 정권재창출보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권위를 재창출하는 데,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역사에 순응하는 길이다. 그러려면 ‘그 사람들’만으로는 안된다. 주변 요직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특히 남북문제 경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야당을 야당으로 제대로 인정해 도움을 얻어내야 한다.

이회창총재도 여권이 악수를 둔다고 좋아만 할 일이 아니다. 이총재가 차기의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자라고 자임한다면, 전임자인 DJ가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쳐야 다음 사람도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운영이라는 큰 틀에서 협조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여당과 진지하게 대화를 해야 한다. 여야 총재가 더 이상 뻗댈 때는 지났다. 이젠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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