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 비서직은 남부럽지 않은 ‘전문직’이다. 미국에선 국가가 시행하는 비서자격시험이 있는데 4년제 학위 소지자는 2년, 단기대학 졸업자는 3년, 학위가 없는 사람은 4년 이상 실무경험이 있어야만 비로소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시험 과목도 경제학 회계 기업법에서부터 사무기술능력, 인사관리, 조직관리, 행동과학론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비서학에서는 비서를 ‘다기능 행정전문가’로 규정한다.
▷당연히 비서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GE의 최고경영자 잭 웰치가 고민하는 의사결정 사항을 마지막 순간에 논의하는 상대가 바로 자신의 비서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이화여대 비서학과 조계숙 교수는 비서의 조건으로 한 가지를 더 꼽는다. ‘내 공(功)은 상사의 것이고, 상사의 과(過)는 내 탓으로 여길 줄 아는’ 직업의식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 조 교수는 진정한 비서라면 상사의 잘못을 과감하게 지적할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동수(安東洙) 전 법무장관의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이 “나 때문에…”라며 눈물을 흘리며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이 여직원은 안 전 장관의 ‘충성서약’ 메모를 너무 일찍 기자실에 돌리는 바람에 상사가 얻은 ‘가문의 영광’을 순식간에 ‘일생의 오점’으로 바꿔버린 셈이 됐다. 여직원의 마음 고생이 안쓰럽다. 그러나 이번 파문을 여직원의 ‘철없는 실수’라고 탓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철없는 상사’가 아닐까. 결국 허물은 윗사람에게 있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하기에 달린 법이다.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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