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신임 법무의 '새 여행'

  • 입력 2001년 5월 24일 18시 25분


“인생은 경주(競走)가 아니고 여행이다.”

지난달 4일 저녁 서울 반포동의 한 중국 음식점에서 만난 ‘최경원(崔慶元)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과 대검 법무부 등의 요직을 거치며 100m 경주하듯 숨가쁘게 달려온 ‘검사’에게 이런 여유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는 ‘옷로비의혹 사건’ 등 검찰의 격변이 시작되던 99년 5월 박순용(朴舜用) 신임 검찰총장과 사법시험 동기(8회)라는 이유로 퇴진 압력을 받고 법무부 차관직에서 물러설 때만 해도 마지막까지 아쉬움과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재야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그는 검찰과 인생을 다시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던 것 같다.

이제 그는 법 집행을 책임지고 검찰을 지휘하며 검찰 인사권을 행사하는 법무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어느 면에서는 긴 여행길의 최고 목표지점에 다다랐다고도 볼 수 있다.

23일 오후 그가 ‘충성문건’ 파문으로 취임 43시간 만에 불명예 퇴진한 안동수(安東洙) 전 장관 후임으로 발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검의 한 검사는 안 전장관과 최 장관의 인사를 골프에 빗대 “‘더블보기’를 했다가 ‘버디’로 막았다”고 말했다. 절묘한 인사라는 평가다. 법무 검찰쪽에 인색하기만 한 야당조차도 그의 장관 임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가야할 길은 험하다. 법무 검찰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고 검찰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또 그는 현재 검찰 권력구도에서 ‘소수파’에 속한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그가 ‘실세’ 장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얘기도 나온다.

최 장관은 24일 취임사 말미에서 ‘엄동설한에 황야를 가는 마음가짐’을 갖겠다고 말했다. 그의 ‘여행’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이수형<사회부>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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