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 이야기]루머에 사서 루머에 팔라?

  • 입력 2001년 5월 28일 18시 21분


‘루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주식투자의 대표적인 격언 가운데 하나다. 어떤 정보가 루머 단계를 지나 뉴스로 알려질 때쯤이면 이미 재료로서의 가치는 다한다는 말이다. 이런 격언이 있을 정도로 증권가는 소문이나 소식이 전파되는 속도가 어느 곳보다도 빠르다.

심리학에서는 루머를 ‘특정정보가 A부인으로부터 가정부 B에게, B로부터 상점 점원인 C에게, C로부터 주인 D에게, D로부터 친구 E에게 전달되는 식으로 우발적이며 비조직적인 경로를 통해 전달되는 연쇄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의한다.

과거 같으면 A로부터 E까지의 전달이 몇 일씩 걸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단 몇 분이면 충분하다. 특히 최근들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채팅을 하는 인스턴트 메신저의 사용이 늘면서 전파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만큼 특정 루머가 주가에 반영되는 속도도 빨라졌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주만 해도 ‘김정일 답방 일정 확정설’이 메신저를 타자마자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의 주가가 크게 뛰어올랐다. 그런가 하면 하이닉스는 감자설이 퍼지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요즘에는 기업인수합병(M&A)에 대한 루머가 특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주에는 메디슨이 외국기업에 인수된다는 소문이 회사측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증시를 떠돌았다.

증시와 직접 관련 없는 루머가 나돌기도 한다. 지난 주초 미국인 관광객 6명이 설악산 흔들바위를 밀어 떨어트렸다는 소문이 신문기사체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삽시간에 퍼졌다. 설악산 관리사무소측은 하루 종일 확인 전화에 시달렸다.

하도 소문이 빨리 움직이다 보니 이제 ‘루머에 사서 루머에 팔아라’는 새로운 격언이 나와야할 지경이다.

이같은 ‘신속성’을 악용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어느 벤처업체는 6개월 동안 월급을 절반만 주기로 했다더라, 또다른 인터넷 업체는 지난달 월급을 아예 한 푼도 못줬다더라는 등 해당 기업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문들이 한동안 떠돌았다.

이쯤되면 ‘루머’가 아니라 ‘데마고기(demagogy)’ 수준이다. 정치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이 용어는 특정한 집단이나 인물에 관해 왜곡과 중상을 할 목적으로 숨겨진 사실이나 날조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행위를 뜻한다.

증시 루머의 ‘파괴력’은 빠른 전달 수단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는데도 그동안 감시 기관의 대응 속도는 한참 뒤졌다. 다행히 코스닥 시장과 관련된 허위 루머를 한층 신속하게 적발해내고 처벌을 강화한다는 소식이다.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지만 ‘루머에 팔아라’가 새로운 증시 격언으로 자리잡기 전에 분위기를 다잡아주길 여의도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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