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적자금 분석' 감출만큼 심각한가

  • 입력 2001년 5월 28일 18시 40분


공적자금이 재정수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조세연구원의 책자가 정부당국의 이의제기 이후 5개월째 배포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도 정부 내에 관료주의의 구태가 만연돼 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국책연구소의 보고서를 공개 못하게 한 정부의 태도도 문제지만 감춰야 할 만큼 공적자금의 해악이 심각하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유일호(柳一鎬) 한국조세연구원장은 분석모델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배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 보고서는 1년간 연구용역을 통해 나온 것이며 단기간에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문서가 아니다. 분석이 잘못된 것이라면 유 원장은 왜 재경부가 지적하기 전 내부 토의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을 수정하지 못한 채 책이 만들어지게 두었단 말인가.

담당연구위원이 조세연구원을 그만둔 이유 중 하나가 소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정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보고서만 강요하는 풍토 아래서 국책연구기관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에게 불리한 내용은 감추고 정부에 유리한 보고서만 발표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종국적으로 국민은 그런 정부를 믿지 않게 되며 이에 따라 경제회복을 위해 필수 요소인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 보고서는 공적자금의 회수율이 80%를 넘어야 국민이 큰 부담을 지지 않고 그 이하가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부담이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60%를 회수하더라도 목적세를 하나 더 신설해야 하고 소득세를 11.5%나 더 걷어야 재정이 파탄나지 않는다는 분석은 지금까지 정부의 긍정적 주장만 믿던 국민에게는 새롭고 놀라운 소식이다.

만일 지금까지의 실적대로 20% 정도만 회수했을 경우 2003년부터 6년 동안 소득세로는 29%, 법인세를 기준으로 한다면 46%를 더 걷어야 재정을 메울 수 있다는 분석은 충격적이다. 국민이나 기업이 이런 정도의 세금을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재정이 붕괴하든지, 아니면 가계나 기업이 파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조세연구원측은 문제의 보고서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반론을 덧붙여 다시 책자를 낸다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공적자금이 재정에 미치는 악영향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책을 다시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이번 일을 교훈삼아 실상을 정직하게 국민에게 알린 후 공적자금의 회수율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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