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전문가에게 듣는다]CEO 15인의 경기진단법…업종따라 천차만별

  • 입력 2001년 5월 29일 18시 43분


하반기 이후 경기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측에서는 호전을 장담하고 있지만 일부 민간 경제연구소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네 할머니들은 일기예보를 듣지 않고도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무릎관절이 쑤셔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리곤 했던 것. 할머니의 관절 예보 처럼 한 회사를 경영하는 CEO(최고경영자)들도 각자 나름대로 경기를 짚어보는 선험적인 지표들을 갖고 있다.

CEO들은 어떤 방법으로 경기를 진단하는지 각 업종별 CEO들에게 들어봤다.(순서는 이름 가나다순)

▽구학서 신세계 사장=E마트 이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소비자 경기지수는 통계청에서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 평가 및 태도지수와 함께 경기를 판단케 하는 중요한 지표다. 중산층 이상의 경기는 백화점의 고급 소비재의 판매 동향에서 알 수 있다.

명절 때 기업들이 주문하는 단체 선물의 단가와 주문량은 현재의 경기 상황 뿐 아니라 향후 경기도 알려준다. 기업들이 단체 선물을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는 앞으로의 기업 활동과도 연관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대중 두산주류BG 사장=불경기때는 소주와 생맥주 판매가 늘고 병맥주 판매가 줄어든다. 특히 소주는 실업률 및 중산층 구조 변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경기 변화에 따라 가정용 판매와 업소용 판매 비율이 변한다.

술의 전체 소비량도 중요한데 최근에는 횟집 고기집 등이 외부 악재로 매상이 줄면서 소주와 맥주 판매량도 지난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위스키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 때 판매가 뚝 떨어졌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 추세다.

▽김병균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펀드매니저들의 표정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어보면 경기를 짐작할 수 있다. 주식형 수익증권의 증감 추이를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증권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여의도의 저녁 풍경을 유심히 살펴본다. 술집이나 노래방이 붐비면 경기 호전의 신호다. 특히 귀가시 모범택시를 잡기 힘들면 경기가 좋아지는 것으로 판단한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김정태 주택은행장=친척이 개인택시를 운전한다. 2달 전부터 승객수가 늘었다고 한다. 차가 많아 도로가 막힌다고 불평까지 한다. 경기 침체 때는 50%가 넘던 공차시간율(손님을 안태운 시간)이 지금은 약 40% 정도로 줄었다고.

24시간 영업하는 대중음식점의 심야 매출액도 한 달전부터 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변화 등을 놓고 볼 때 경기는 막 저점을 통과하는 순간인 것 같다.

▽문영주 동양제과 상무(외식사업 본부장)=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의 매출 증감률, 고객수, 특정 메뉴의 판매량 추이 등이 모두 경기를 말해주는 중요한 시그널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주 요리 외에 에피타이저, 디저트, 스페셜 음료 등의 매출이 증가하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주부 고객들 때문에 오후 2∼5시 매출이 늘어난다. 전반적으로 식사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녁 9시 이후의 매출도 늘어나고 주차장 점유율이 높아진다.

▽박성주 그랜드하얏트서울 부총지배인=외국에서 오는 손님 가운데 관광객을 제외한 비즈니스맨의 호텔 이용 숫자를 파악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내놓는 예상치 자료를 참고로 하며 전년 대비 숫자가 늘었다면 경기 전망은 맑음 이다.

한국에 취항하는 모든 항공사의 비행기 대수와 기종 변경 여부를 파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비행기 대수가 증가하거나 기종이 대형으로 바뀐다면 비즈니스 전망이 좋다는 뜻이다.

▽심이택 대한항공 사장=항공화물 운송량과 승객수 증감으로 경기를 판단한다. 승객수는 주식시장의 발달 등으로 가처분 소득의 변화폭이 확대되면서 과거만큼 경기에 밀접하게 연동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물 운송량의 증감은 경기변동을 약간 앞서서 정확하게 보여준다.

현재 승객수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화물은 약간 감소한 상태다. 하지만 화물 물동량 예측을 보면 하반기에는 어느 정도 회복단계로 진입하리라고 판단된다.

▽양재길 삼성에버랜드 전무=25년간 에버랜드를 운영하면서 터득한 나름대로의 지표는 쌍백지수 와 쌍십지수 다.

쌍백지수 는 4월과 5월의 월간 입장객이 100만 명을 돌파하는지를 따지는 것이고 쌍십지수 는 5월 5일과 6월 6일의 당일 입장객이 10만 명을 돌파하느냐를 보는 것이다. 계절적인 특성상 상반기에 매출이 집중되는 에버랜드로서는 두 가지 지수가 달성될 경우 그 해의 연간 매출도 좋은 편이다.

▽원대연 제일모직 사장=백화점 등 소매 유통의 의류 판매 동향을 살핀다. 불황일 때는 고가 정장의 판매가 확연히 줄어들고 저가 의류 판매는 늘어난다. 모피 수입이 늘어나면 중산층 이상 고객들의 소비심리가 살아난다는 반증이다. 또 임직원들의 옷 색상이 불황일 때는 어두운 색조가 눈에 많이 띈다.

소비 심리가 살아난다고는 하지만 4월부터 실질 구매는 오히려 줄고 있다. 경험에 비춰볼 때 경기는 4·4분기에나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웨인 첨리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3가지를 주로 본다. 첫째는 전시장에 찾아오는 고객수를 본다. 경기에 아주 민감한 변수다. 둘째는 수입차 업체의 총 판매대수를 따진다. 올들어선 1,2월에 반짝하더니 3월 이후부터는 다시 제자리 걸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주 가는 레스토랑(특히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대기 손님의 숫자를 들여다보고 향후 한국 경기를 판단한다.

▽이계안 현대자동차 사장=승용차 중에서도 중형차 이상의 내수 판매량을 본다. 그 가운데서 특히 대형차의 판매량을 중요시한다.

아반떼XD, EF쏘나타 등 중형 및 준대형 승용차의 경우 1월에는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달 보다 8% 줄어들었으나 2,3월에는 각각 32%, 33% 늘었으며 4월에는 증가율이 무려 61%에 달했다. 대형차는 3월까지는 감소했지만 4월에는 30% 이상 증가세로 돌아섰다. 나머지 자동차 메이커를 합한 증가율도 31.3%를 기록했다. 이같은 현황을 볼 때 향후 경기는 밝아 보인다.

▽이금룡 옥션 사장=옥션 사이트에 경매로 올라오는 중고물품의 종류와 숫자를 보면 경기 부침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중고품 비중이 높아지고 의류나 잡화류 등 저가품이 많이 올라오면 서민경제가 어렵다는 뜻이다. 가전제품의 경우 새로운 제품을 사기 위해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경기가 좋다는 신호. 주부들이 중고물품을 많이 내놓을 때는 경기가 안좋을 때고 청소년들이 많으면 경기가 괜찮다고 보면된다.

요즘엔 중고품 비중이 30% 가량이며 가정주부들이 옷이나 잡화류를 많이 내놓고 있다.

▽이재웅 다음 사장=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 로비라운지는 경기 예측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빈자리가 없을 때는 경기가 활황이고 빈 자리가 많으면 경기 침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택시를 잡을 때 기다리는 시간도 좋은 지표다. 호텔 라운지가 경기의 선행 지표라고 한다면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은 현재 경기의 반영이다. 다음 사이트에 마련된 인터넷 대출 코너에서도 경기를 읽는다. 올해는 대출 건수가 크게 늘었는데 체감경기가 안좋다는 뜻이다.

▽차지수 PIC리조트코리아(여행사) 대표=가족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늘거나 직원 포상휴가를 보내주는 기업이 늘면 경기가 좋아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경기가 좋아지면 외국인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부동산 업자들이 바빠진다.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는 외국인 전문 부동산 업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은 외국인 문의가 뜸하다고 한다. 사우나의 안마사로부터도 경기를 읽는다. 안마를 받는 여성이 늘면 그만큼 소비심리가 풀린 것으로 해석한다.

▽홍승녀 피앤이컨설팅(헤드헌팅 회사) 대표=고객 회사들의 채용 의뢰를 본다. 호황일 때는 신규사업이나 사업 확장을 위한 채용이 증가한다. 불황일 때는 빈 자리에 사람을 채울 때도 이전 사람보다 낮은 직급을 채용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 부정적인 경우는 채용 대상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있다가 경기 호전이 확실히 예측될 때 채용을 서두른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경기가 전환하는 시점의 채용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금동근·이나연·성동기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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