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치르다 보니 온통 정신적 물질적 '빚' 천지다. 표를 준 유권자, 세비를 무는 국민들이 모두 채권자 행세다. 크고 작은 부탁에, 자칫 실수라도 하면 욕설 비난에, 정치의 품질이 고작 그 정도냐는 손가락질에… 의원들은 괴롭다. 전화가 걸려 오면 가슴부터 뛴다. 그래서 최근 발신자 표시 서비스(CID)에 가입하는 의원이 는다고 한다. 가족 친지 비서 당직자의 번호 말고는 아예 안받는다. 생소한 번호는 나중에 비서를 시켜 용무를 확인한다.
▷디지털기술 덕을 정치인들이 톡톡히 보는 셈이다. 그러나 전화 골라 받기로 민심에서 멀어지는 일은 없을까. 공직자로서 자계(自戒)를 소홀히 하지는 않을까. 옛 왕과 선비들이 궁행(躬行), 즉 몸소 행하는 것을 왜 그토록 중시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행하고 친하려 하지 않으면, 서민이 믿지 않는다(不躬不親 庶民不信)'는 말은 벌써 옛 경전에 나온다. 임금이나 관리가 백성에 앞장서서 농사를 짓는 궁경(躬耕)이 있었다. 궁중의 후비가 양잠 장려를 위해 땀흘려 누에를 치는 궁상(躬桑)도 있었다.
▷몸소 흙을 밟고 주무르며 고통을 분담하는 현장의식이 값진 것이다. 그런 민생과 위정자의 숨결 나누기에서 정치 신뢰의 싹이 자랐다. 조선 선비들의 자세도 그랬다. 학예와 더불어 궁행을 살피는 것이 필수 였다. 농경시대의 교훈은 디지털 시대라도 유효하다. 정치인이 서민의 애환과 분노에서 멀어지는 것은 위태롭다. 전화를 통한 욕설과 비방이라도 다 정치의 산물(output)이요 반응인 것이다. 귀찮고 두렵더라도 듣고 삭이면서 피드백을 생각해야 국회의원 다운 것이다.
<김충식 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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