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宗廟(종묘)

  • 입력 2001년 5월 29일 19시 27분


옛날 우리나 중국사람들은 죽음을 딴 世上으로 移民 가는 것 쯤으로 여겼다. 그래서 肉身(육신)만 사라질 뿐 靈魂(영혼)은 여전히 남아 계속 後孫을 지켜보고 있으며 生前과 똑같은 생각과 行動을 한다고 했다. 그것을 기리는 대표적인 行爲가 祭祀(제사)다. '祭如在'(제여재·제사는 조상이 살아 계시는 것처럼 지내라-孔子).

자연히 靈魂도 살 집이 필요했으니 그것이 바로 位牌(위패) 또는 神主다. 본디 나무로 만들었으므로 木主라고 했다. 그 자체가 祖上이었으므로 孝心 많았던 우리 조상들이 지극히 모셨으니 여기서 '神主모시듯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후에는 간단하게 종이에다 쓰기도 했으니 그것이 紙榜(지방)이다. 옛날 行勢 깨나 했던 大家에서는 祖上의 神位를 모신 祠堂(사당)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宗廟(일명 太廟)는 바로 國家의 祠堂으로 王과 王妃 및 그 祖上의 神位를 모신 곳이다. 死後 神主를 奉安하다가 7代가 지나면 조묘인 永寧殿(영녕전)으로 옮겼는데 이를 조천이라 했다. 하지만 萬世不朽(만세불후)의 功業이 큰 王일 경우, 부조지위라 하여 계속 奉安하였는데 朝鮮은 총 19位의 王이 여기에 해당된다.

位牌의 배열에도 엄격한 규정이 있다. 본디 중국 周나라 때의 宗法制度에서 유래한 것으로 始祖를 가운데에, 2, 4, 6世를 그 좌측에 두어 昭(소), 3, 5, 7世를 우측에 두어 穆(목)이라고 稱했는데 이를 昭穆制度라고 한다. 이를 家庭에 비유하면 始祖를 가운데, 高祖와 祖父가 昭, 曾祖와 父親이 穆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宗廟는 漢나라 때의 변형된 禮法에 따라 同堂異室(동당이실), 즉 동일 건물 내에 방 별로 따로 모시고 있다.

자연히 宗廟는 王宮, 社稷壇(사직단)과 함께 三大 神聖不可侵(신성불가침)의 聖域(성역)이었다. 그래서 우리나 中國이나 새 王朝를 세우면 어김없이 宮闕(궁궐)과 함께 社稷壇과 宗廟를 營爲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일정한 原則이 있었다. 左祖右社 (좌조우사)다. 즉 王宮을 중심으로 宗廟를 左側, 社稷을 右側에 모셨다. 方位로 보면 東쪽에 宗廟, 西쪽에 社稷이 位置하여 서로 對稱(대칭)이 되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宗廟祭禮가 유네스코로부터 인류문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것은 우리 祖上의 '빛난 얼'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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