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씨가 스승인 미당 서정주의 시세계와 생애 등을 비판한데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대 이남호 교수가 고씨의 미당론을 비판하는 글(본보 21일자 A19면)을 발표하자 문학평론가 김명인씨가 이에 맞서 고씨를 옹호하는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서정주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흔히 시와 인간을 구별하라고 말하지만, 나는 원래 시처럼 작품과 인간이 똑 맞아떨어지는 장르가 없다는 생각이고 서정주의 경우라면 더군다나 안성마춤이라는 생각이었다.
한때 그런 서정주의 제자였던 시인 고은이 근자에 ‘미당담론’이라는 제목으로 비평적 에세이 한 편을 썼고, 그것 때문에 저널리즘이 자못 소연한 듯하다. 고은은 서정주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자화상’을 문제 삼아 서정주의 욕된 일생의 원천을 밝은 대낮에 꺼내 놓았다.
◇ 권력 지향성 언어로 포장
고은은 이 글에서 서정주와 얽힌 개인사의 편린들을 먼저 담담히 풀어놓은 후 서정주를 두고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 “세상사를 개괄적으로 깨달은 나머지 세상에 대한 어떤 종류의 자책도 필요 없게 된다”, “체질적인 자기합리화”, “수줍음 대신 본능적 공포”, “시대에 대한 고소공포증에 가까운 굴복”, “역사의식으로서의 자아가 가능하지 않았다”, “시대의 정면에서 약한 존재이고, 시대의 측면에 기탁함으로써 존재의 회로를 찾아내는 곡신불사의 운명” 등의 비수 같은 수사들을 ‘차분히’ 펼쳐갔다.
그의 이런 평가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나는 이 글이 적어도 사십구일은 묵혀서 내놓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착 가라앉은 글이며, 그 안에는 죽은 ‘스승’에 대한 적지 않은 예(禮)가 갖추어져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처럼 ‘마음에 어른이 없는’ 세대의 눈으로는 차라리 성에 차지 않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 대한 몇 편의 반론도 읽었다. 이 반론들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서정주 신화’가 생각보다 매우 심하다는 것이었다. 한 시인은 서정주의 시 세계를 일컬어 “눈부신 모국어의 빛살로 시의 산맥을 이룬” 것이라고 하면서 그의 친일과 이후의 권력지향을 두고 충분히 값을 치른 것인 만큼 새삼스레 “스승의 산소에 칼을 꽂는” 고은의 글은 슬프고 두려운 일이라 했다. 한 평론가는 한술 더 떠서 고은의 글을 “우리 문학사의 커다란 유산인 미당의 시를 스레기통에 넣는”, “마땅히 제지되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나는 고은의 서정주의 삶에 대한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자화상’에 대한 해석에는 약간의 이의가 있고, 정말 ‘졸작’ 몇 편으로 그런 온당한 평가의 매개를 삼은 것에는 아쉬움이 있다.
서정주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야말로 그의 가련할 정도로 기회주의적인 삶을 비추는 적나라하게 맑은 거울들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그의 일생을 통한 권력지향과 정치적 노예성을 살짝 도포(塗布)하는 언어가 그토록 공교롭다는 것에 아이러니컬한 경이감을 느낄 뿐이다.
나는 “미당의 삶에서 정치적 삶의 비중은 매우 작다”고 한 비평가에게, “그의 삶과 시 모두는 차라리 과잉 정치적이었다”는 말을 돌려주고자 한다. 친일시나 월남파병 예찬시, 전두환 찬양시만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영남정권 시대에 ‘질마재 신화’를 쓰기 전에 ‘신라초’를 먼저 써야 했던 호남 시인의 슬픈 정치감각은 곧 그대로 그의 삶이자 시가 되는 것이다.
◇ 맹종-신화화 제자들 가련
그게 마름의 삶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게 노예의 시가 아니고 무엇일까. 노예의 시가 때로는 더 아름다운 법이긴 하지만 서정주는 ‘비단옷을 입은 노예’였다. 나는 사실 그 자태에 홀리거나 홀린 척하거나 홀리게 하는 후인들이 더 가련하기도 하고 더 무섭기도 하다.
서정주 신화의 그늘에는 그의 수많은 제자들의 유아적이고 봉건적인 맹종도 깃들어 있지만, 터무니없는 정치적 저능아 서정주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신화화함으로써 한국현대사를 일관해온 자신들의 무지몽매한 노예성에 함께 면죄부를 받으려는 일종의 집단무의식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그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김명인(문학평론가)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