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 수다맨에게 박수를!

  • 입력 2001년 6월 1일 16시 14분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란 노래를 만든 노영심이 결혼을 했네요.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에서 수다맨을 만날 때마다, 저는 '나를 처음본 게 정확히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떠올립니다. 솔직히 전 제 아내를 처음 만난 날이 무슨 요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암기'란 단어가 뭇매를 맞는 시절입니다. 무엇인가를 단순하게 외우는 것보다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응용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할 수 있는 인간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요. 물론 그 동안 암기 교육의 폐해가 심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언젠가 아내와 어린 시절을 각자 회상하다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여덟 살에서 동시에 멈췄던 적이 있습니다. 벌써 이십오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내와 전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고교 시절, 저는 선택과목으로 농업을 배웠습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돼지의 종류로 바아크셔, 요오크셔, 햄프셔, 두룩저어지가 떠오르고, 길을 걷다가 정육점 앞만 지나도 한우의 임신기간 279일, 젖소의 임신기간 283일을 셉니다. 군대 시절에는 암구호로부터 시작하여 장교의 책무에 이르기까지, 또 많은 문장들을 외웠었지요.

수다맨의 수다는 암기로부터 나옵니다. 그는 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외우는 사람이지요. 각국의 수도를 외우는가 하면, 중국집 메뉴판에 적힌 음식들과 가격을 외우기도 하고, 달력에 표시된 일년 열두 달의 기념일들을 줄줄 뱉어내기도 합니다.

확실히 인간은 점점 자신의 두뇌 대신 기술 문명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만 해도 친구들 전화번호를 열 개 이상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은 집 전화번호도 가끔씩 헷갈립니다.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시키기 시작하면서부터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되었지요.

학생들과 함께 MT를 가서도 난처할 때가 있습니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자고 하면, 학생들은 노래가사를 끝까지 외우는 곡이 없다며 노래방에 가자고 합니다. 노래방 화면에 뜨는 가사를 보지 않고는 노래도 한 곡 멋지게 뽑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문학사나 예술사를 가르칠 때도 학생들은 그 역사적 사실을 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검색어만 치면 관련 지식을 한꺼번에 뽑을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지요.

휴대전화가 없고 노래방이 없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 사돈의 팔촌까지 친척들의 이름과 나이와 직업을 꿰뚫고 있던 우리네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만큼 기억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겠지요. 과연 우리가 어디까지 기억을 잃어버려야만 하는 것인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다맨처럼 장황하고 철저하지는 않더라도, 저는 오늘 가족들의 생일과 친구들의 전화번호, 또 제가 좋아했던 이문세나 동물원의 노래들을 다시 암기하려고 합니다. 며칠 후면 또 잊어버리겠지만, 이렇게 기억을 하려는 노력 자체가 그들을 향한 사랑임을 굳게 믿습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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