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예술]황석영의 '손님'

  • 입력 2001년 6월 1일 18시 41분


□황석영 지음

□262쪽 7500원 창작과비평사

황석영의 신작 ‘손님’을 감명 깊게 읽었다. 이로써 ‘오래된 정원’은 그것대로 나쁘지 않되 황석영 문학의 새로운 서장(序章)이었음이 분명해졌다.

먼저 그 특유의 리얼리즘에 관하여. 일찌기 한 글에서 황석영은 객관적 묘사에의 열정을 표명한 적이 있었다. 감정을 절제하고 수사를 줄이면 건조한 듯한 문장이 얻어지며 이를 통해 사물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그의 소설의 진수는 그 자신이 이해하는 그런 객관화 방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정신 속에 살아 움직이는 강인한 생명력, 생명에의 열정이야말로 그의 소설의 요체였던 것이다. 따라서 오랜 침묵 끝에 ‘오래된 정원’이 발표되었을 때 그 서정적 문체는 그가 새롭게 추구하는 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 될 수 없었다.

이제 ‘손님’에서 그는 옛날의 명징한 언어로 돌아가 이렇게 말한다. “과거의 리얼리즘 형식은 보다 과감하게 풍부하게 해체하여 재구성해야 한다. 삶은 놓친 시간과 그 흔적들의 축적이며 그것이 역사에 끼어들기도 하고 꿈처럼 일상 속에 흘러가 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역사와 개인의 꿈같은 일상이 함께 현실 속에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몇 년 전 내 자신 리얼리즘의 새로운 재구성을 논하면서 추구했던 바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명백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으며, 황석영 아닌 누구도 내가 원했던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손님’에 가득한 산문적 언어의 진경, 전통적 양식을 살린 엄밀한 구성, 전편(全篇)에 흐르는 상징과 몽타쥬, 시간과 시점의 교차들, 산자와 죽은 자들의 성숙한 교감이 젊고 미숙한 소설에 지친 나를 새로운 감동으로 이끈다. 앞으로 황석영의 독자들은 그가 펼쳐내는 진경의 세계를 다시금 만끽할 수 있으리라고 안심한다.

다음으로 역사의식에 관한 것. 황해도 신천에서의 양민 약살을 다룬 이 오래된 이야기가 왜 이렇게 멀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읽히는가. 생생한 현재성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제를 살지 않으면 오늘을 살 수 없는 역사적 격변기를 살고 있다. 황석영은 ‘손님’이라는 간명한 말로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을 역사적 맥락에서 간파하는 직관력을 보여준다. 이 역사해석은 여러 만만찮은 쟁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그가 제기하는 ‘손님’의 문제는 지금처럼 사유하는 문학이 빈곤한 시대에 우리에게 어떤 문학이 더 필요한가를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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