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이회영선생 재조명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 입력 2001년 6월 1일 18시 51분


“한 민족의 독립운동이란 그 민족의 해방과 자유의 탈환을 뜻한다.…거기에는 오직 독립운동하는 자들의 자유 합의가 있을 뿐이다.”

독립운동하는 자들의 자유합의에 의한 해방과 자유. 여기에는 해방과 자유를 억압하는 어떤 강제나 억압도 용납될 수 없다.

‘삼한갑족(三韓甲族·조선 제일의 족속)’으로 태어나 중국 땅에서 일제와 맞서며 굶주리다 ‘딸의 옷까지 팔아먹고’ 누워 있어야 했던 아나키스트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1867∼1932·사진). 그의 삶이 대중적 역사저술가로 활약 중인 이덕일씨에 의해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웅진닷컴)로 재조명됐다.

강력한 왕권국가의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에게 주도적 집권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적 혼돈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폄하돼 왔지만, 우당이 추구했던 아나키즘의 본래 의미는 ‘자유연합’에 가깝다.

“아나키즘의 궁극 목적은 대동의 세계, 즉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니 각 민족 또는 각 사회군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자유연합적 세계기구를 만들어 연결해야 할 것이다. 각 민족 단위의 독립된 사회가 완전히 독립적인 주권을 가지고 자체 내의 문제나 사건은 독자적으로 처리하는 한편, 다른 사회와 관계된 문제나 공동의 과제에 대해서는 연합적인 세계기구가 토의 결정하여 실행해 나가면 될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다던 인간들이 늘상 피로 얼룩진 권력 투쟁으로 끝을 맺곤 하던 인간의 역사를 바라볼 때 ‘자유연합적 세계기구’를 주장하는 우당의 이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는 허망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당의 이런 확신 뒤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상호부조하고 협동노작(協同勞作)하는 사회적 본능이 있어 왔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인간 상호간, 사회 상호간의 증오와 불신은 과도기적인 것이요, 불변의 것도 아니다. 태고로부터 연면히 내려온 인간성의 본능은 선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부가 담당해 오던 많은 역할이 NGO(비정부기구)나 NPO(비영리기구) 등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이양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자유와 평등의 이상적 유토피아를 꿈꾸며 철저히 권력을 배제하려 한 아나키즘은 시민사회 운동정신의 원류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간의 이런 역할 분담 이면에는 인간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함을, 한 세기 전의 우당은 전해준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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