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도 예금 만기가 됐다고 전화로 알려드렸더니 찾아오셨다. 나는 마침 시행중이던 비과세생계형저축으로 가입하시라고 권했다. 그중에서 10%대이상 수익률을 내고 있는 단기신탁상품이 좋다고 안내했다. 당시 확정금리상품 이자율은 6∼7%수준에 그쳤다. 두분은 3개월짜리 단기상품이 자신들의 자금계획과도 잘 맞는다며 만족해하셨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이분들이 가입한 뒤부터 3년만기 국고채금리가 7%대에 이를 정도로 상승했고 따라서 채권에 투자한 단기신탁상품의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두분이 맡긴 원금이 손실나기 시작했다. 처음 한달간은 ‘일시적인 현상이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달이 다 지나도록 금리는 계속 오르기만 했다.
다른 고객들은 어느 정도 자신들이 판단해 가입한 것이었지만 두분은 전적으로 내 설명에 따라 결정했기 때문에 여간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다.
고민 끝에 시간을 더 끌기보다는 빨리 알려드려야 겠다고 결정했다. 역정이라도 내실까봐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의 원금 손실규모를 솔직히 말씀드리고 “앞으로도 금리가 안정되기에는 상당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안내도 했다. 두분께서는 별 말씀 없이 내일 찾아가겠노라고만 하셨다.
다음날 나는 두분께 드릴 스카프선물을 준비해 놓고 약속시간을 기다렸다. 자리에 앉으신 두분께서는 긴장해 있는 내게 “손대리가 잘 해주려고 하다 그렇게 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오히려 위로해주셨다.
두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평소에 찾아오셨을 때는 차한잔 드리며 상담한 것 밖에 없는데 자식 같은 사람의 고충을 선뜻 이해해 주신 것이다. 두분이 가신 뒤 혼자 생각에 잠겼다.요즘에는 은행창구에서도 다양한 복합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는 새로운 금융지식으로 잘 무장하고 있는지, 고객에게는 이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지 등을 반성하게 됐다. 고객이 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매양 그것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 사전에 충분히 공부하고 고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손길선(국민은행 청계지점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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