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 1979년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가을소나타’는 명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작. 그는 이 영화 촬영당시 암 투병 중이었고 1982년 사망했다.
영화에서 사람들끼리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를 자주 다뤄온 베리만 감독은 ‘가을소나타’에서 모녀관계에서조차 진정한 의사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준다.
목사의 아내인 에바(리브 울만)는 7년 간 만나지 못한 어머니(잉그리드 버그만)를 집으로 초대한다. 국제적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에바는 짧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모녀는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잦은 클로즈업으로 에바와 어머니의 미묘한 표정변화를 담아내며 두 사람의 고통을 보는 이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어머니를 넘어서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으나 결국 실패한 딸, 평생 자유롭게 살았으나 자신도 무력하다는 걸 딸이 알아주기를 바랐던 어머니. 두 사람은 함께 지냈던 시간조차 다르게 기억하며 서로 상대방의 마음에 가 닿는 데 실패한다.
에바는 거의 저주처럼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퍼붓지만 자기연민에 빠져 어머니를 비난할 때, 그는 평소 자신이 보살펴온 지체부자유자 동생 헬레나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 이 장면은 결국 소통의 불능이 관계 자체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각자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있기 때문임을 상징한다.
거의 집 안에서만 촬영됐고 연극적인 진행방식 때문에 모든 관객에게 어필할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노년의 잉그리드 버그만이 눈빛과 입술의 움직임만으로 어떻게 감정을 실어 나르는 지를 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영화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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