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구조조정 투자회사 겉돈다…채권단 손실확정 미온적

  • 입력 2001년 6월 4일 18시 32분


‘아무도 원치 않는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

정부와 채권단이 지난해 공적 기업구조조정 제도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종료하며 올 초 도입한 CRV가 채권단과 기업의 반발로 표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워크아웃을 진행 중인 24개 기업(대우계열 제외)의 15조원에 이르는 채권 처리도 늦어지고 있다. 실제 올초 9개 금융기관이 설립한 ‘CRV설립추진사무국’도 최근 파견된 직원의 일부를 돌려보내는 등 기능이 크게 축소되고 있다.

▽CRV, 무엇이 문제인가〓CRV란 채권단이 보유한 채권을 일괄 넘겨받아 구조조정을 전담하는 페이퍼컴퍼니. 채권이 한 CRV에 집중돼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구조조정을 앞당길 수 있다. CRV의 장점은 △채권단은 부실채권을 털고 정상 여신인 CRV지분을 갖게 되며 △기업은 이자면제채권이 탕감돼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기업가치가 크게 좋아진다는 것.

3월 CRV설립추진사무국의 이성규 사무국장은 “5월말까지는 채권단이 CRV로 채권을 다 넘기고 6월에는 CRV가 설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그러나 손실을 확정짓기 싫어하는 채권단, 구조조정이 달갑지 않은 기업의 반발로 단 한 건의 CRV도 출범하지 못했다. 한빛은행의 여신 담당 관계자는 “보유채권이 담보냐, 무담보냐 뿐만 아니라 충당금을 충분히 쌓지 않은 금융기관은 부실이 추가로 생겨나기 때문에 채권자간 이해 관계가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CRV에 투자할 외자유치도 문제다. 조흥은행의 관계자는 “기업이 살아나려면 채무탕감뿐만 아니라 신규자금도 투입돼야 한다”며 “CRV가 추진되는 기업은 대부분 사양 산업이어서 투자자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해당기업의 대주주들도 CRV 추진시 출자전환과 감자 등이 불가피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검증되지 않은 CRV에 편입돼 기업의 운명을 맡겨야 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CRV가 얼마나 진행될까〓채권단은 갑을을 CRV로 처리할 방침이었지만 지난달 중순 보류했다. 주채권은행은 “CRV 추진 중 갑을방적과 합병하면서 CRV 성공 여부가 불확실해졌다”고 설명했지만 채권단간 이견이 큰 이유였다. 이밖에도 CRV의 대상으로 물망에 올랐던 고합 동국무역 신호제지 신동방 등은 CRV추진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주채권은행이 채권의 70%를 보유하고 있는 신우만이 계획대로 CRV를 추진하고 있다.CRV의 이 사무국장은 “기업들이 지금은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는 이유로 CRV를 기피하고 있지만 워크아웃이 끝난 뒤 채권회수가 시작되면 견디기 힘들 것”이라며 CRV 추진 이유를 강조했다.

표: CRL 추진일정

표: CRL 추진 일정

2000년11월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에 관한 법률 제정

2001년2월

9개 금융기관을 대표로 CRV설립추진위원회 발족

2001년3월

CRV 대상기업을 선정하고 추진방안 확정

2001년4월

CRV추진 기업에 대한 실사 추진(예정)

2001년5월

CRV추진 기업의 채권을 이양(예정)

CRV설립(예정)

2001년6월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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