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영화전문지 ‘무빙 픽처스’의 페스티벌 캘린더에 소개된 국제영화제는 484개에 이른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는 367개의 국제영화제가 올라 있다. 여기에 소개되지 않은 작은 규모의 국제영화제를 더한다면 아마도 몇천은 헤아리게 될 것이다.
이 중에는 올해 73회를 맞은 아카데미영화상이나 반세기를 넘긴 베니스(58회), 에든버러(55회), 로카르노(54회), 칸(54회), 베를린(51회) 영화제처럼 오랜 전통을 이어온 영화제도 있고 인도의 뭄바이영화제나 대만의 타이베이영화제같이 10년 미만의 신생 영화제도 있다. 일본의 야마카다 다큐멘터리 국제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짧은 기간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영화제가 있는가 하면 시네 마닐라영화제, 시네 베가스영화제처럼 유명무실하거나 실패한 영화제도 적지 않다. 프라하영화제나 마닐라영화제처럼 화려하게 창설해 놓고 단명으로 끝난 영화제도 있다.
이처럼 수많은 영화제 속에서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성격이나 목표가 뚜렷해야
우선 영화축제가 지향하는 성격이나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오버하우젠(독일) 클레르몽페랑(프랑스) 탐페레(핀란드)영화제는 단편영화에, 암스테르담(네덜란드) 야마카다(일본)영화제는 다큐멘터리에, 히로시마(일본) 안시(프랑스) 자그레브(유고)영화제는 애니메이션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분야의 대표적 영화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낭트(프랑스)는 제3대륙 영화제, 프리보그(스위스)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영화제로 자타가 인정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영화를 집중조명한다. 또 최우수 작품을 만든 신인감독에게는 다음 작품 제작을 지원하는 등 아시아의 새로운 감독을 발굴해서 세계로 진출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특히 3년 전부터 영화를 기획하고도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역량 있는 아시아 감독들과 세계적인 배급업자 또는 재정지원자들을 부산에서 만나게 하는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아시아의 영화산업을 실질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지역경제에 도움돼야 성공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순환’,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중국 왕 샤오슈아이 감독의 ‘베이징 바이시클’, 그리고 올해 칸영화제의 ‘주목할 시선’ 부문에 올랐던 인도 무랄리 나이르 감독의 ‘개의 날’은 모두 부산에서 제작기획을 발표하고 외국의 자본을 얻어 완성한 영화들이다.
둘째, 영화축제는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생산성을 가져야 한다. 영화축제가 단순한 소비성행사로 일관한다면 그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1990년 인구 1만6000명의 눈덮인 탄광촌을 영화제의 도시로 만들면서 연간 10억엔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일본의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생산적인 영화제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부산에서 촬영하는 영화에 대한 행정지원 업무를 관장하는 부산영상위원회를 탄생시킴으로써 부산을 ‘영화제의 도시’에서 ‘영화촬영의 도시’로 발전시키는 생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영화축제가 이를 주관하는 사람들만의 자기도취적인 행사가 아니라 모든 영화인의 사랑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동참하는 행사가 될 때 진정한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카데미영화상은 그 화려함에서, 칸영화제는 그 권위에서 세계 정상이다. 이들은 반세기가 넘는 오랜 역사를 겪으면서 만인이 사랑하는 영화축제로 성장했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영화축제들도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만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김동호(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