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출범한 한국싸이버대학(www.kcu.or.kr) 초기화면엔 탈무드의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없이, 누구나 모든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기관. 한국싸이버대학은 올 봄 이같은 기치로 출발한 9개 사이버대학 중 하나다.
연세대 공학관 지하1층에 자리잡은 한국싸이버대학은 당연한 일이지만, 고즈넉했다. 학생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캠퍼스라 할 수 없는 두 칸의 사무실엔 직원들만 분주했다. 학기말 시험 역시 인터넷으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교재를 보면서 답을 쓸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 대학 김정기(金正基·41)학장은 고개를 저었다. “일반대학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커닝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학생들을 믿어야지요.”
그는 검정고시 출신으로 4년제 대학 책임자 자리에 오른 독특한 인물이다. 동급생들이 한창 공부할 때 열아홉살의 나이로 입시학원 강단에 섰고, 그들이 이미 학교를 떠난 나이에 미국서 대학을 다녔으며 40세에 박사학위와 변호사자격증을 땄다. 평생교육기관인 사이버대학 이념에 딱 들어맞는 셈이다.
# 솔직한 학장,투명한 디지털
이같은 사전지식을 갖고 김학장을 만났다. 그런데 그는 기자를 고민스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너무 솔직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신문기사답지 않음’을 무릅쓰고 그의 대답을 그대로 옮겨야할 것인지, 아니면 기사체로 다듬어야할 것인지 머리를 쥐어뜯을 지경이었다. 인터뷰는 이렇게 진행됐다.
-사이버대학이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입니다. 그동안의 공과를 평가해주십시오.
“처음엔 불안했어요. 전혀 새로운 개념의 대학이니까요. 강의 컨텐츠와 학사운영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지만 기술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겠어요. 학기초에 시스템이 2시간동안 다운이 된 적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준비도 안하고 학교 시작했느냐며 들고 있어났어요. 물론 인터넷상에서지요. 그러다 한 학생이 ‘우리 학교인데 우리가 이해해야지 어쩌겠느냐’고 해서 가라앉았어요. 지금은 별 문제 없어요.”
-강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인터넷의 특징인 쌍방향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나요.
라인 교육은 반복 심화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잖아요. 우리는 교수들이 충분히 준비해서 강의할 수 있도록 부담을 많이 줄여주었어요. 그런데 (심각한 표정으로) 학생들이 질문을 안해요. 사실 일반대학의 강의실에서도 질문이 활발하게 오가지는 않잖아요. 우리 학생들이 일방적 수업에 익숙해 있으니까 인터넷에서도 그런 거예요. 학생들이 조용해요. 교수들이 할 일이 없어요. 그래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내죠. ‘잘 있나. 공부잘되나’ 물어보면 ‘예, 만족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학생들도 뭘 요구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예요.”
그래가지고 김학장이 강조하듯, ‘인터넷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는 디지털 엘리트를 길러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기자도 솔직히 물어봤다. 김학장은 자신만만했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기본이예요. 컴퓨터가 6학점이고, 영어는 12학점이 필수지요. 디지털시대의 무기가 컴퓨터와 영어 아닙니까. 또 내년부터는 교양필수로 유학(儒學)을 공부하게 돼요. 정신적 기초없는 정보기술(IT) 발전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학장님은 열아홉살부터 학생들을 가르쳐왔습니다. 교육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십니까.
“학교교육이 어떻게 사람을 바꿔놓겠어요. 시스템으로 학생을 잡아놓는 거지. 평균수명이 늘어나니까 앞으로 점점 더 교육기간이 길어질 거예요. 그래서 평생교육이 필요한 거죠. 안그러면 무료해서 어떻게 살겠어요.”
너무나 꾸밈없는 학장이 아닌가. 놀란 기자는 “학교교육이 의미가 없다면 사이버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물었다.
“이 대학은 그렇지 않아요. IT계통의 고급인력을 배출하니까요. 일반적으로 대학교육은 수요자중심의 교육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취업을 해서도 배운걸 바로 쓰지 못하고 다시 교육을 받는 거죠. 이 대학은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할 겁니다.”
# 세상의 요구에 맞춰주마
솔직함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정답만을 말하되 삶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은 세상이다. 이제는 제도교육, 그것도 첨단 사이버교육의 장으로 들어왔지만 김학장이 80∼90년대 비제도권 교육에서 스타로 떠오른 데는 이처럼 솔직한 태도가 크게 작용했을 듯했다.
그는 어려운 집안살림 때문에 장학금을 주는 고교에 들어갔다. 고 2때 장학금제도가 없어지자 자퇴를 하고 서울로 왔다.
자리를 잡은 곳은 대입 준비학원. 칠판을 닦고 수강증을 검사하는 ‘조교’였다. 밤에는 책걸상 위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서울대 본고사 영어 문제를 풀이해주는 강사가 없었다. 자신이 담당하는 교실 학생들에게 새벽에 30분 일찍 오라고 해서 직접 문제풀이를 해줬다. 이를 안 학생과장에게는 뭇매를 맞았지만 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좋아했다. 이듬해인 열아홉살, 고교 중퇴의 학력으로 정식 학원강사가 됐다. 가르치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명문대를 나온 강사들 사이에서 그의 영어 강의가 수강생 1위였다.
“고교를 그만둘 무렵 나는 ‘거로(巨路)’라는 아호를 지었어요. 큰 길이라는 뜻도 있지만 사실은 ‘거꾸로’라는 의미예요. 친구들이 공부할 때 나는 가르쳤고, 대학졸업할 때 나는 미국서 대학입학했으니까요. ‘거꾸로를 올바르게’ 하겠다는 포부가 있었어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내 처지가 고단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80년 재학생의 입시학원 수강이 금지되면서 시련을 맞았다. 처음으로 영문법 교재를 만들었는데 그만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일기장에 ‘빚없이 산 칸트가 부럽다’고 쓸 정도였다. 그를 눈여겨 본 강사가 영어학원의 강사자리를 알아봐줬다. 대학생 대상의 영작문 강의였다. 시중의 영작책을 모조리 사다가 통째로 외웠다.
명강의 소문이 퍼져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심지어 고시촌에서도 영어특강 요청이 쏟아졌다.
“그때는 내가 출세한 줄 알았죠. 그런데 어느순간 그게 사상누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게 학력이라는 걸 안거죠. ‘그렇다면 치사하지만 내가 맞춰주마’ 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미국유학을 떠났어요.”
뉴욕주립대 정치학과 수석 졸업, 귀국 후 집필한 ‘거로 워크숍’ 시리즈 160만부 판매 돌파, 전국 60여개 대학에서 영어특강, 이기택(李基澤)민주당총재 정치특보 활동.
런데 세상은 박사학위, 변호사 자격증 같은 ‘증명’을 요구했다. 실력이 아니라 제도에 의존하는 우리사회가 불합리하다고 여겼지만 사회가 원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 밀워키 시 마켓대에서 협상법을 전공하고 1년간 지방법원 변호사로 일했다. 그리고 귀국. 이번에는 사이버대학 학장으로 변신했다.
# 아버지의 삶으로
목표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인생. “나는 내 삶을 조각하는 예술가”라고 김학장은 말한다. 난관에 부닥칠 때 남들은 위험부담이 두려워 주저앉았다면, 그는 위험을 발판삼아 뛰어올랐다. 남들은 취미도, 휴식도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했지만 그는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는데 희열을 느꼈다. 중학교 때 꿈이 정치가였다는 그에게 지금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뜻밖에 그는 “내 삶의 지표는 아들”이라고 했다.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지인은 “학장이 3년 전 아내를 잃은 뒤 많이 변했다”고 귀띔해줬다.
대학가 영어강사 시절 결혼한 대졸출신 연상의 아내는 타인을 위해 그렇게 희생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김학장의 인생에서 스승같은 사람이었다.
아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비로소 인간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도전의 연속이었던 삶이지만 이제는 아들과의 삶이 더 소중하다.
“돌이켜보면 10년 단위로 공부를 해왔어요. 서른살에 정치학, 마흔살에 법학, 쉰살이 되면 종교학을 공부할 계획이예요. 지금까지 세상이 원하는 자격증을 위해 공부를 했다면 앞으로는 종교를 통해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하려구요.”
결국 평생 공부를 할 작정이라는 얘기. “우리 학교 학생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해 한다”며 자신도 그런 공부를 하고싶다고 했다.
▼김정기 학장은▼
△1960년 경남 거제 출생
△1977년 고교 2년 중퇴
△1990년 미국 뉴욕주립대 정치학과 졸업
△2000년 미국 마켓대 법학대학원 졸업. 법무박사학위 취득
△2000년 5월∼현재 미국 위스컨신주 변호사
변호사협회회원, 한국협상법학연구소장
△2000년 12월 한국싸이버대학교 학장
△저서〓‘Vocabulary Workshop’‘Reading Workshop’ ‘TOEFL Workshop’등.
▼윈-윈 협상기술▼
김정기학장은 미국서 협상법을 전공했다.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협상법을 전공한 것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겠다는 도전정신의 발로. 1년 간 위스컨신주 밀워키시 지방법원에서 중재변호사 생활을 하며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윈-윈(Win-Win)모델을 만들려고 애썼다. “협상기술을 활용하면 사회생활이 훨씬 편해진다”는 김학장에게 윈-윈 협상법을 들어보면….
1. 상대방에 대해 개인적 조직적
사전조사를 충분히 한다.
2.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방 입장을
반영하는 논리를 먼저 내세운다.
3. 본인의 약점은 솔직하게 시인한다.
4. 되도록 천천히 부드럽게 이야기하되 가장 중요한
결론은 맨 나중에 말한다.
5. 꼭 챙겨야 할 것과 포기해도 손해가 덜한 부분을
구분, 후자를 오히려 중요한 것처럼 인식시킨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코 잃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