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술의 혁명으로 세계는 급속히 변하고 있다. 휴대폰이니, 디지털TV니, PDA니 하는 것들은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이들 새로운 매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해 있던 책과 활자를 점차 우리 곁에서 밀어내고 있다. 휴대폰과 인터넷 세상에서 자라나는 요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세계는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마샬 맥루한의 이 저서는 인쇄술의 발명이 서구문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책이다. 특히 알파벳과 인쇄술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지각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면서 다가오는 전자시대의 미래를 그려보고 있다. 맥루한은 알파벳과 인쇄술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단순히 기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을 재형성시키는 수단임을 보여주고 있다.
맥루한에 의하면 모든 매체는 인간과 세계를 연결해 주는 감각의 확장이다. 따라서 역사적,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매체는 인간의 감각균형에 영향을 주는 조건이 된다.
말하자면 지배적인 매체는 특정 감각을 강조함으로써 전체 감각들간의 지배비율을 변하게 만드는데, 표음문자 알파벳의 발명은 입과 귀에 의존하던 구어적 인간을 눈에 의존하는 활자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발명은 활자인간의 이런 시각중심적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인쇄술의 표준화된 활자는 동질성과 획일성을 강조함으로써 구어와 필사를 원형에서 벗어난 것으로 만들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문학의 상품화를 초래하고 ‘저자’와 ‘공중’의 출현을 낳았다고 보는데, 근대국가의 성립에는 대규모 공중의 형성이 필수적이므로 근대국가의 형성도 따지고 보면 인쇄술의 발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셈이다.
결국 서구의 근대문명은 인쇄술이 낳은 시각문명으로서 그것은 동질성과 획일성 그리고 선형성을 특징으로 한다.
맥루한은 인류가 전자시대를 맞아 붕괴된 감각기관의 균형을 되찾고 구어중심의 부족시대로 복귀할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아파트 옥상마다 내걸린 위성수신기는 그가 노래한 ‘지구촌’의 도래를 말해 주는 듯 하다.
그러나 세계 어디서나 CNN을 보면서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먹는 이 동질성과 획일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의 ‘지구촌’은 미국 다국적 기업의 안마당에 불과한가.
양승목(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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