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중세 카니발은 민중의 해방구" …'프랑수아 라블레…'

  • 입력 2001년 6월 8일 18시 42분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미하일 바흐친 지음/이덕형 최건영 옮김/798쪽 3만5000원/아카넷▼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은 문학 철학 음악 미학 역사학 분야에서 해박한 지식과 창조적 분석력을 가진 세계적 석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바흐친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인문학도들 사이에서 거대한 담론이 돼 왔다.

20세기의 명저로 남아있을 이 저서는 그가 1940년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것이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심사를 받지 못했다. 전후에 다시 제출돼 1946∼1949년 모스크바 학계를 양분시킬 정도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나 반대파 때문에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후에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후 1965년에 가서야 조국 러시아에서 빛을 보게 됐다.

바흐친이 이 책을 통해 연구한 중세 프랑스 소설가 라블레(1493∼1553)와 전 5권으로 된 그의 역작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는 예술적 사상적 저력과 문학사적 의미에서 셰익스피어, 단테, 세르반테스에 버금간다.

라블레는 익살꾼과 어릿광대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향토색 짙은 옛날의 사투리와 속담, 상스러운 말, 욕설을 쏟아 놓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을 마구 뿌려놓는다. 바흐친의 해석에 따르면 민중의 장터에서 들리는 욕설, 카니발 기간의 욕설, 수도사들의 욕설들은 결코 천박함과 경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가까운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비공식화 된 친밀함과 애정이 동시에 담겨있는 것이다. 또한 라블레에게 있어서 카니발적 행위로 똥을 던진다든지 오줌을 퍼붓는 일은 낡은 세계의 죽음과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동시에 표출하는 웃음의 드라마이다.

나아가 바흐친은 똥이나 오줌의 이미지 속에 출생, 비옥, 갱생, 안녕이라는 요소가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똥이나 오줌은 죽음과 탄생, 출산과 임종의 고통이 서로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익살맞은 양상 속에서 양면적 가치를 제시하고, 언제나 우스꽝스런 괴물을 동반하는 점에서 몹시 그로테스크하다. 바흐친에 의해 라블레는 웃음을 통해 중세의 경건함, 엄숙함, 영원, 부동, 절대, 불변과 같은 압제와 족쇄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하는 작가로 읽혀지고 있다. 라블레가 작품 전반에 걸쳐 제시하는 웃음은 카니발이란 공간 속에서 민중 또는 천민이 마음껏 웃어대는 진정한 자유와 민주의 웃음인 것이다.

이 책은 무한한 창의력의 가능성을 입증해 주는 세계적 대작이다. 마음잡고 이 작품을 읽어내는 것도 결코 단기간에 해결될 과제가 아니다. 역자들이 그것을 우리말로 소화하여 번역해 놓은 것은 우리의 문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대단한 역사(役事)가 아닐 수 없다. 생소하고 난해한 문학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조금만 집중하면 쉽게 바흐친 속으로 융화될 수 있을 정도로 읽는 이를 고려한 번역이란 점에서 문학전공자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권장해 보고 싶은 책이다.

김근식(중앙대 러시아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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