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앨빈 토플러-오명회장 대담

  • 입력 2001년 6월 8일 18시 45분


엘빈 토플러(왼쪽) 오명
엘빈 토플러(왼쪽) 오명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융합이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미래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앨빈 토플러 박사는 “한국이 제3의 물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IT와 BT의 융합을 선도하는 국가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정보화사회 추진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방한한 토플러 박사는 7일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사를 방문해 본사 오명(吳明) 회장과 2시간여에 걸쳐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대담했다.

▽오명 회장〓1985년 귀하께서 방한하셨을 때 만난 적이 있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앨빈 토플러 박사〓그 당시에는 IT 인프라가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잘 구축돼 있다. 한국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넘어가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내부적으로 금융시스템과 재벌기업들을 개혁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세계에도 적응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오 회장〓한국은 산업화가 늦어 오랜 기간 개도국으로 머문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다행히 1960년대부터 산업화를 추진해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으나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맞았다. 한국이 정보화를 더 일찍 추진했다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IMF 관리체제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토플러 박사〓동의한다. 한국은 60년대 이후 수출주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이같은 성장모델을 채택해 경쟁이 심하다. 특히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과거의 수출주도형 성장모델로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다. 한국은 우선 내수시장을 키워 지나친 수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경제의 변동으로 과도한 영향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또 수출품목을 과거의 기계나 박스형 제품에서 정보집약상품이나 서비스 등으로 다양화해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한국이 이런 노력에 일단 성공해도 중국이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혁신을 멈춰서는 안된다.

▽오 회장〓한국은 IMF 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한국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토플러 박사〓우선 한국은 정부 은행 기업간에 만들어져 있던 과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부가 은행에 지시를 내리고, 은행이 싼 자금을 기업에 지원하며, 기업은 대가로 돈가방을 건네던 고리를 말한다. 또 한국기업들은 수직형 조직구조에서 벗어나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등 좀더 유연한 조직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재벌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재벌시스템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 경쟁력을 여러 개 갖고 있으면 어느 한 분야가 침체돼도 다른 분야가 뒷받침해주기 때문에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경제상황의 변화에 발맞춰 얼마나 민첩하게 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누가 기업을 소유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지식정보를 잘 활용하고 효율적인 조직구조를 통해 이익을 내느냐가 중요하다.

▽오 회장〓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은 급속히 성장해 왔으나 90년대 후반 들어 성장속도가 둔화됐다. 앞으로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어떤 전략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토플러 박사〓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의 결합이다. 지금까지는 IT가 BT의 발전을 촉진하고 뒷받침해왔다. 이제부터는 반대로 BT가 IT의 발전을 이끌 것이다.

▽오 회장〓IT와 BT의 융합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달라.

▽토플러 박사〓일반 대중들은 유전자 조작기술 등 바이오기술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갖고 있다. 물론 바이오기술은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개발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바이오기술은 건강 증진, 질병 치료, 식량 증산, 공해 감소 등의 효과가 크다. 바이오혁명은 IT분야에도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앞으로는 칩을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재배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발전에는 융합이 중요하다. 개별 기술이 아니라 여러 기술들의 수렴과 융합이 진정으로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오 회장〓한국은 1998년부터 벤처붐이 형성됐다. 지금은 코스닥시장이 침체되면서 많은 벤처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때의 거품이라고 주장하는데….

▽토플러 박사〓주가는 경제의 건전성을 가늠하는지표가아니다.주가가50% 떨어졌다 해서 기업의 50%가 도산한 것은 아니다.

▽오 회장〓전세계적으로 정보통신산업이 침체에 빠져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토플러 박사〓닷컴에 대한 과도한 반응과 통신산업에 대한 과잉투자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를 둘러싸고 지나친 열기와 비관주의가 뒤섞여 있다.

▽오 회장〓최근 미국에서 신경제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정보통신 경기의 침체는 신경제 회의론자들이 힘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을 줬다고 보는데….

▽토플러 박사〓정보기술이 신경제의 전부는 아니다. 신경제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라 1950년대 지식노동자들 비중이 육체노동자들의 비중을 앞지르면서 시작됐다. 신경제의 시동을 건 획기적인 기술 발전은 기업의 대형컴퓨터 활용, 제트기 상용화, TV 보급, 우주시대 개막, 피임약 등장 등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오 회장〓세계경기와 미국 경기의 전망은 어떤가.

▽토플러 박사〓미래는 알 수 없지만 미국 경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침체도 빠르고 회복 또한 빠르다. 유럽은 기술공포증을 갖고 있어 경제 전망이 밝지 않다. 유럽연합(EU)은 1년 예산의 절반 이상을 농업분야에 쏟아붓고 있다. 반면 정보기술이나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예산은 극히 적다. 유럽에 비해 미국과 아시아의 전망은 밝다. 다만 세계 경기를 예견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군사적 변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의 정치가 불안해진다면 세계경제의 판도는 크게 바뀔 수 있다.

▽오 회장〓일본은 하드웨어에 집착해서 지식기반 사회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강력한 IT산업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토플러 박사〓일본은 과거 새로운 IT를 재빨리 받아들여 기존 제품에 놀라울 정도로 멋지게 응용했다. 그러나 서비스 금융 유통산업 등에는 IT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일본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국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등 경제보다 정치가 더 큰 문제다. 쌀시장과 유통시장의 개방으로 전통적인 자민당 지지세력이던 농민과 소매상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오 회장〓정보화의 혜택이 국가 지역 세대간에 편중되게 적용되는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어떤 대책이 있나.

▽토플러 박사〓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넷 접속 등 IT 관련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기업들간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그 비용은 내려갈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1970년대에도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용어는 없었지만 나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낙관적이다. 19세기 전화가 처음 나왔을 때도 정보 격차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일종의 ‘아날로그 디바이드’인 셈이다. 그 당시 전화는 일부 갑부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가정에 전화가 있다. 인터넷 격차는 전화 격차가 해소된 것보다 훨씬 빨리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 회장〓다른 사람들보다 십수년이나 앞서 ‘정보혁명’을 예견했던 비결은 무엇인가.

▽토플러 박사〓미래예측은 신비한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이 변화를 주도하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게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나는 VCR가 개발될 당시 연구진과 이야기 나눠보고 VCR가 보편화할 것이라는 것을 곧 알았다. 또 테드 터너를 만나 케이블TV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오 회장〓다음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새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토플러 박사〓다가오는 지식경제에 관한 것이다. 부의 창출을 시간 공간 지식 등의 측면에서 분석하는 내용이다.

▽오 회장〓끝으로 동아일보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토플러 박사〓지식기반사회, IT와 BT의 융합 등이 유토피아 사회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많은 부작용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정반대 세상이 오는 것도 아니다. 그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를 궁극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정리〓천광암·김승진기자>iam@donga.com

▼앨빈 토플러는 누구▼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192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미래학자. 1949년 뉴욕대를 졸업하고 미국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잡지에 칼럼을 썼다. 1957년부터 2년간 포천지 백악관 출입기자와 편집장을 지냈고 코넬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생겨나기도 전에 컴퓨터 가상현실 전자네트워크를 이야기했고 인터넷사용자가 700명도 안될 때 인터넷 세계를 예견했다. ‘VCR’라는 이름도 없을 때 VCR시대를 묘사했으며 소련이 무너지기 10년 전에 이를 예측했다. 각국의 학자 정치인 기업인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토플러의 책을 읽었고 새로 사전에 등록되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미래쇼크(Future Shock)’ ‘제3의물결(The Third Wave)’ ‘권력이동(Power Shift)’ 등 토플러의 대표 저서들은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그는 대부분의 저서를 부인 하이디 토플러 여사와 공동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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