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함경북도 회령군 영예군인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중 아내 최씨 등 일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 중국 홍콩을 거쳐 국내로 들어왔다. 김씨는 입국 당시부터 몸이 불편해 가족과 시내 관광을 할 때도 휠체어를 이용했으며, 이후 지병인 중풍이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출신인 김씨는 6·25전쟁때 인민군에 징집됐으며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평양에서 회령으로 추방돼 극심한 식량난을 겪던 중 장인인 재미교포 최영도씨(84·뉴욕거주)의 도움으로 탈북에 성공했다. 당시 김씨 가족은 북한의 식량난에 따른 대규모 탈북 행렬의 출발점이 되면서 정부로 하여금 대량 탈북 대책을 마련토록 촉구하는 계기가 됐었다.
김씨는 탈북 당시 장녀인 명희씨를 데리고 오지 못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다 지난해 여름 명희씨도 가족을 데리고 탈북함으로써 모든 가족이 서울에서 해후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아들 금철씨(36)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데리고 한국에 오려고 애쓰시느라 병을 얻으셨다”며 “통일될 때까지 건강하게 사시기를 기대했는데 좋은 날을 보지 못하고 가셔서 가슴이 아프다”며 애통해 했다.
김씨의 유해는 서울 송파구 강동성심병원에 안치됐으며, 장지는 북한이탈주민후원회에서 마련한 경기 파주시 용미리 서울시립공원묘지의 탈북자 전용묘역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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